박성주 부편집장
박성주 부편집장

최근 양궁 국가대표였던 안산 선수가 일본 콘셉트의 식당거리를 보고 이를 ‘매국노’라고 칭해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결국 그는 3일 뒤 비하의 의도는 없었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리며 자신의 말실수를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관련 자영업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경솔했지만, 그가 저지른 말실수의 정도에 비해 너무나 큰 혐오 발언이 잇따랐다. 안산 선수에 대한 인신 공격부터 그의 선수 활동 경고 조치 요구까지, 사람들은 과할 정도로 비난에 열을 올렸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연예계에서도 말과 사과가 오갔다. 배우 한소희가 열애설에 휩싸였을 당시 경솔한 언행으로 인해 사과문을 적게 됐다. 물론 신중하지 못한 대처였다고도 볼 수 있으나, 이 일로 인해 한소희는 몇 날 며칠간 온 SNS를 뒤덮을 정도로 비난을 받았고, 그에 따라 광고주들은 줄줄이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정말 이들이 이 정도로 비난받을 일을 한 것일까? 비판의식 없는 폭력적인 말과 비난만 쏟아지는 현상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말이 그토록 중요하다지만 말 때문에 이토록 세상이 날 서 있던 적이 있던가? 동시에 자신도 모르는 폭력의 언어를 내뱉고 있거나 혹은 정당하지 못한 비난을 내뱉고 있지는 않은가?

정작 정치인이 막말과 망언을 쏟아내는 일에는 관심이 적은 것을 생각하면 불편한 기분은 더 커진다. 지난 12일(화)에는 국민의힘 장예찬 후보가 정계 진출 전에 페이스북에 쓴 정제되지 않은 글이 밝혀졌다. ‘서울시민의 교양 수준이 일본인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싶다’ ‘책값 아깝다고 징징거리는 대학생들이 제일 한심하다’ 등의 도를 지나친 발언들이 끊임없이 공개돼 충격을 줬다. 더불어민주당의 정봉주 전 의원은 ‘목발 경품’ 발언으로, 양문석 후보 역시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발언으로 인해 공천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은 언론인에 대한 회칼 테러 사건 발언으로 결국 사퇴했다. 아무리 선거철이라지만 격한 말의 대결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성실한 사과와 진실한 반성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 순간을 모면하고자 하는 형식적인 사과와 조치에서 끝날 뿐이다. 그러나 이런 발언은 실수나 개인의 도덕성을 따지는 것으로 치부될 수 없는, 공직자로서의 그릇된 생각까지 드러내는 것이기에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우리는 인식의 저변에서 쉽게 비난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오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발언자의 구차한 내면까지 드러내는 망언을 모질게 질책하고 진실한 사과를 받는 것이 옳을 텐데, 익숙하다는 듯 미지근한 반응에 그치고는 한다. 오히려 평소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이들에게는 비난의 날이 날카롭고 거세다. 물론 발언의 여파, 공인으로서 지위와 책임의 무게를 모두 수치화해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직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더 책임을 갖고 말을 해야하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남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말을 일삼고, 그 여파도 미미하다. 그러나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른 이들에게는 ‘이때다’하는 식으로 무차별적으로 모욕하고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기 일쑤다.

우리의 비판의 잣대가 향할 방향을 더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참을 수 없는 말들에 마땅히 지적하고 마땅히 꾸짖을 줄 아는 눈동자와 목소리가 필요하다. 나아가 귀중한 말들에 더 귀 기울이기 쉽도록, 아닌 말에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일갈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언제나 발언대에 올라선 감시자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의 귀와 입이 향하는 곳은 어디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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