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푸틴 5선의 과정과 함의는

푸틴은 지난 15일(금)부터 17일까지 치러진 러시아 대선에서 약 87%라는 러시아 역사상 전례 없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종신 집권의 포문을 열었다. 푸틴의 5선은 어떻게 가능했으며, 푸틴의 5선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푸틴, 종신 집권을 꿈꾸다

푸틴은 전례 없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대통령 5선을 확정 지었지만, 푸틴의 대선 승리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도출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번 러시아 대선은 경쟁 선거가 아니라 사실상 푸틴이 단일 후보인 허울뿐인 선거였기 때문이다. 푸틴은 유력한 반(反)정권 인사가 대선에 출마하는 것을 막아 왔고, 그 결과 이번 러시아 대선에는 4명의 후보가 등록했지만,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은 니콜라이 하리토노프의 득표율은 전체의 4%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장덕준 교수(국민대 러시아·유라시아학과)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해 온 보리스 나데즈딘은 대선 후보 등록에 필요한 1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으나, 제출 서류에 오류가 있다는 이유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등록을 거부했다”라며 “푸틴은 자신에 맞서거나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자가 정치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선거 과정을 둘러싼 잡음도 계속됐다. 김성진 교수(덕성여대 정치외교학전공)는 “이번 대선은 그동안의 러시아 선거 중 가장 부패한 선거라는 평을 받는다”라며 “사실 여부를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조작용 투표용지가 배포되는 등 선거 결과를 조작하려는 시도가 언론을 통해 여럿 보고됐다”라고 밝혔다. 

푸틴은 이번 선거 전부터 자의적인 헌법 개정을 통해 종신 집권의 기틀을 공고히 닦아왔다. 그는 2018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연장하고, 이어 2020년에는 연임 제한을 무력화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국방연구원 두진호 연구위원은 “푸틴은 2020년, 동일 인물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횟수를 총 2회로 제한하지만, 현재 대통령이 수행 중인 임기와 이전에 수행한 임기는 연임 제한에 산입하지 않는다는 개정 내용이 포함된 헌법 개헌안을 통과시켰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푸틴이 2020년 이전에 수행한 대통령 임기는 연임 제한에 산입되지 않기 때문에, 푸틴은 이번 대선 승리를 기점으로 두 번의 연임을 통해 이론상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2036년에 푸틴이 83세가 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종신 집권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장덕준 교수는 “1인 지배 체제가 더욱 확고해짐으로써 푸틴은 21세기판 차르로 등극한 셈이다”라고 평가했다.

 

강한 러시아 건설을 향해

그러나 전문가들은 푸틴의 장기 집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푸틴의 독재자적 면모와 함께, 독재에도 불구하고 일부 러시아 국민이 푸틴을 지지하는 배경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이선우 교수(전북대 정치외교학과)는 “러시아 국민의 푸틴 지지율은 비록 과장됐을 수는 있지만, 이처럼 90%에 육박한 득표율을 기록한 선거에서 나온 표를 모두 가짜 표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라고 밝혔다. 두진호 연구원 또한 “푸틴이 이번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은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푸틴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의 집권 1기에 부패를 척결하고 ‘안으로 강한’ 러시아의 기반을 다지며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고 평가받는다. 김성진 교수는 “푸틴은 전 대통령 옐친의 집권 시기 국유 기업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옐친의 측근에게 돌아간 이익을 회수해 부패를 바로잡았다”라고 평가했다. 푸틴은 이런 과정을 거쳐 정경유착을 약화하며 중앙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 한편, 2000년 초반부터 시작된 국제 유가 상승이 이끈 러시아의 경제 안정도 푸틴을 향한 지지로 귀결됐다. 두진호 연구위원은 “푸틴은 경제가 안정되며 늘어난 국부를 복지 예산으로 사용하는 등 민생 안정 정책을 펼쳐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다”라고 설명했다.

국제 관계에서 ‘강한 러시아’를 추구하는 푸틴의 행보도 러시아 국민이 지지를 보내는 배경이 됐다. 장덕준 교수는 “소련 붕괴 직후 국가 위상의 추락을 경험한 러시아인은 국제 무대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을 고양한 푸틴의 리더십에 열광했다”라고 전했다. 특히 푸틴은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2004년부터 러시아에 대한 안보 위협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이에 강력히 대응하기 시작했다. 김성진 교수는 “푸틴은 나토가 영향권을 러시아 국경 바로 근처까지 확대하려는 시도를 경계했다”라며 “푸틴이 2008년과 2014년 감행한 조지아 침공과 크림반도 강제 병합은 푸틴의 불안감이 공격적 전략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선우 교수는 “러시아의 침공은 미국과 서방 중심의 국제 질서 확산에 대항하고 강대국 도약의 열망을 실현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푸틴은 서방을 향해 날을 세우며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지지를 결집시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대표적인 예시라고 말한다. 장덕준 교수는 “푸틴의 지지율은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고공 행진했지만, 2018년 연금 수령 시기를 연기하는 연금 개혁 후 상당 수준 하락했다”라고 푸틴이 맞았던 정치적 위기를 전했다. 게다가 서방의 대러 제재 여파로 경제 침체가 계속되고 푸틴이 코로나19에 대해 미흡한 대응을 보이자, 정부에 대한 불만은 더욱 거세졌다. 러시아 내 독립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 센터의 주간 여론조사 결과 2020년에는 푸틴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지지도가 60%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개전 이후 푸틴의 지지율은 반등을 이루며 80% 이상으로 치솟았다. 이선우 교수는 “푸틴은 전쟁을 통해 국내 정치로 향한 관심을 미국이나 서방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라며 정치적 필요가 푸틴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결정한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푸틴 당선 이후 전개될 국제 질서는

5선에 성공한 푸틴은 더욱 확고해진 1인 지배 체제를 바탕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지 않고 강력한 대외 정책을 펼칠 것이라 예상된다. 김성진 교수는 “러시아는 푸틴의 선거 압승 이후 국내 정치가 안정된 상황이기에 푸틴이 그간 펼친 대외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라며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나토 가입 포기를 약속받는 등 유리한 조건을 확보해 전쟁을 끝내려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푸틴의 5선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고해진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 동북아 지역에서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치하는 신냉전 구도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장덕준 교수는 “러시아와 북한 간 밀착이 단순한 거래를 뛰어넘어 무기와 군사기술의 교환을 포함하는 군사협력으로 이어질 경우 대한민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두진호 연구위원은 “북한 비핵화의 중요한 행위자던 러시아가 북한과 가까워지는 것 또한 우리나라로서 매우 큰 악재다”라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유지하면서도 러시아와 반목하지는 않는 세심한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주장했다.

 

푸틴은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독재자적 행보를 동시에 보이며 ‘강한 러시아’ 체제를 공고히 했다. 푸틴의 5선이 불러올 신냉전 체제 혹은 새로운 국제 질서는 우리나라 안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유라시아 지역 내 긴장이 동북아 지역까지 전달되는 양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푸틴의 행보와 이에 따라 변화하는 세계 정세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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