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들이 벌이는 작은 축제는 밤 늦게 술판에서 시작됐다. 정신이 휘청거릴 만큼 술에 취하면 노래방에 갔고, 노래방은 삽시간에 광란의 무대로 변했다. 빠르고 격한 리듬의 노래를 연신 불러대며 온갖 기괴한 춤들을 선보였다. 연주가무(煙酒歌舞)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흥이 최고조에 이를 즈음이 되면, 누군가 꼭 자우림의 ‘일탈‘을 불렀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나 해.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 쇼를~♬ 연구실과 집을 오가는 일상을 벗어나 훌쩍 떠나고 싶었고, 번지점프를 하고 싶었고, 스트립 쇼를 벌이고 싶었다. 모두가 똑같은 바람이었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했으므로,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일탈‘을 대신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축제가 있다. 가장 흔한 것이 집단적인 삶을 상징화하고 제도들을 규정하고 장식하며 연극화하는 장식적인 축제이다. 결혼 피로연이나 중․고등학교때 경험했던 학예회 따위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또 순간적인 일탈과 전복을 통해 사람들을 다시 일상으로 복귀시키는 축제도 있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통해서만 일탈했던 대학원생들은 다음날 다시 연구실로 돌아갔을 것이고, 다시 책에 파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축제는 일탈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 젖힌다. 장 뒤비뇨는 『축제와 문명』에서 축제는 공동의 습관을 싸고 있는 베일을 자주 찢어버리려 한다고 말한다. 축제는 한 체계에서  다른 체계로 옮겨갈 때 생겨나며, 우리가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 파괴시켜 버려야 할 것을 상기시킨다는 것이다.

지난주에 서울대에서도 축제가 있었다. 예전과 달리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프로그램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참여하는 학생들도 늘어나는 추세라 한다. 좋은 일이라 반기면서도, 어쩐지 축제를 둘러싼 우리의  논의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참여시키는가에 매몰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여하는 수를 늘리기 위해 학생들의 관심사만을 뒤쫓다가, 일탈과 창조라는 축제의 정신에 소홀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게다가 학생들이 관심이 대중문화에 기울어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흥미만을 고려하는 일은, 가뜩이나 위축된 대학문화를 더욱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우리의 축제가 기존의 형식을 답습하는 학예회나 결혼 피로연 수준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도서관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하고, 본부 앞 잔디밭에서 스트립쇼를 벌이는 축제를 상상해 본다. 사회적 모순과 인간의 한계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노래와 연극이 곳곳에 메아리치고, 그릇된 권위와 억압이 웃음 소리에 파묻히는 즐거운 광경을 떠올려 본다. 공동체와 개인의 잃어버린 꿈을 다시 되찾는 것, 그것이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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