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들썩하고 조금은 들뜬 낯선 기운이 학교 안을 감돌던 지난 4일(토) 오전, 일주일의 그 어느 아침보다도 한산하고 고요해야 할 토요일의 공기가 예사롭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들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일찍부터 들뜬 표정으로 나온 사람들은 화려한 세트가 세워진 대운동장 주변에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기 가수들의 대규모 합동 공연이 열리는 체육관도 아니고 인기가요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방송국도 아니지만, 그 이상의 쟁쟁한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하는 ‘대학가요제’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문화 행사를 유치하겠다는 46대 총학생회(총학)의 취지 아래 서울대에서 대학가요제가 진행됐다. 그동안 학교측이 교내의 대중문화 행사 개최를 불허하다시피 했고, 이번에도 “학문의 전당에서 상업적 행사를 치를 수 없다”는 일부의 반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가요제를 유치해 화제가 됐다. 77년 1회 대학가요제가 시작된 이후 ‘대학가요’라는 장르가 생겨나기도 했을 정도로 대학가요제는 민중가요와는 또 다른 대학문화의 한 축을 생산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 후 세월은 흐르고 흘러 올해로 스물 일곱 해 째를 맞았지만 정작 대학생 참가자들의 공연과 그에 대한 심사가 이뤄지는 메인 행사는 뒷전이고, 세간의 관심은 온통 “진행자가 효리냐, 유리냐”는 사소한 가십거리에서 시작해 어떤 연예인들이 몇 명이나 출연하는지에 쏠려있었다.

 

껍데기만 남은 대학가요제

대학생 스스로 기성문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 가져야

 

 

게다가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는 프로듀서가 이번 대학가요제의 연출을 담당한 것도 대중적인 ‘쇼’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 몫 했다. 어차피 ‘대학만의 문화’라는 실체를 찾기 어려운 지금, 대학가요제를 통해 공감할 수 있는 대학생의 정서를 형성할 수 없는 대신, 재미있게 즐기기라도 하자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담당 프로듀서는 이 날 수상자 발표 후 대상을 수상한 팀을 자신의 프로그램에 섭외했고, 그들은 일주일 후 가요 프로그램의 출연자 명단에 인기 가수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가수들 틈에 ‘대학생’으로 무대 위에 올라간 그들이 보여준 공연은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작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기성 가수들과 다를 바 없어 적잖이 실망을 안겨줬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우리 주변에도 부지기수인 ‘가요를 부르는 대학생’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학가요제가 처음 시작되던 때만 해도 연예계에서 대학생들이 소위 ‘엘리트’로 대접받았다지만, 이제 더 이상 대중문화 속의 대학생은 특이한 존재가 아니다. 그만큼 대학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거리도 점차 좁아지고 있고, 이제는 대학문화라고 칭할 만한 대학만의 독자적인 문화의 틀조차도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대중문화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일단 즐기고 보자’는 문화가 대학 내에 서서히 정착되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면서, 언제부턴가 우리가 속한 대학의 문화는 그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로 만신창이가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 심각한 것을 거부하고 ‘쿨(cool)하게’ 살자는 풍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지만, 이를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대학생들이 몫은 아닐 것이다. 화려한 ‘쇼’의 즐거움에 가려 놓치기 쉬운 우리만의 고민과 의식이 담긴 ‘대학문화’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장윤선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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