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스물두 살 먹은 아들 녀석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면 특이한 컬러링 음악이 나온다.

 

 “…알 수 없는 나의 미래가 너무 두려워…”

 

이 노래 가사 때문인지, 날씨가 서늘해진 오늘 밤에 쓸데없이 옛날 생각을 한다. 정확히 삼십 년 전 가을, 나도 미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얼 하며 살까? 군대는 어떻게 할까? 남들이 다 가는 대학이니 따라서 대학을 왔고, 남들이 다 하는 공부니 따라서 공부를 했고, 그 때의 정치 상황이 답답하여 여럿이 모여 이런저런 공모도 했고, 여자 친구를 만나 호감을 얻기 위해 허세를 부리기도 하였다. 마땅히 진로를 못 찾고 그냥 공부나 계속할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갑자기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고, 나는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주위의 친구들이 하나 둘 유학을 갔고, 유학이 결정을 유보하는 한 방법이어서 나도 유학을 가게 되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어 이것도 재미있네, 하며 계속 공부를 하게 되고, 인생의 업으로 삼게 되었다. 그래도 대학 시절에는 머리에 세상과 인생의 모든 고민을 담아, 이런 문제들을 내가 다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때론 헤매고, 때론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떠들곤 하였다. 옛 일을 회상할 수록 아들 녀석 핸드폰 음악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얼마나 두려울까 이 녀석이. 아니 이 녀석뿐만 아니라 강의시간에 눈이 벌겋게 충혈된 학생들을 보면, 저 녀석 어젯밤 이 생각 저 생각에 마음고생을 한 것이 아닌가 하고 가슴이 찡할 때가 종종 있다.

 

학생들과 술자리라도 할 때면, 나는 행복해진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서울대학 학생들을 이기적이라고 욕을 하여도, 나는 안다, 이 녀석들이 속이 꽉 찬, 다 자란 어른들이라는 것을. 신문에서는 우리 서울대 문과 학생은 대부분이 고시공부를 하고, 심지어는 이과 학생들도 고시 공부를 하고, 이들은 사회적 출세만을 위해 산다고 한다. 자연대, 공대, 농생대 학생들도 졸업 후에는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대학원을 가고, 아니면 편한 자리의 군대를 갔다 와서 빨리 유학을 가고, 빨리 박사를 하여, 우리나라 대학들이 좋아하는 곳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한 후, 필사적으로 대학교수가 되길 위해 산다고 한다. 회사에 취직하는 것은 사오십 대에 명예퇴직을 당하기 십상이니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신문이 우리 학생들에 대해 무엇이라 쓰건, 나는 안다, 우리 학생들은 내가 그랬듯이, 아니 예전의 나보다 더 고뇌에 차, 세상의 모든 어려운 문제를 머리에 담아 괴로워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세대가 하지 못한 일을 다 해주리라고 믿는다. 한글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줄 한국의 ‘제임스 조이스’가 될 작가, 정략적 정치인이 아닌 지도자, 통일 후 우리나라의 나아갈 길을 밝혀줄 역사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인터넷 시대의 경제학자, 노벨상을 받을 과학자,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산업 기술을 찾아낼 공학자가 우리 학생들 가운데서 여럿 나올 것을 나는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우리 학생들을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괜한 자신감인가? 흔히 사람들이 자신감의 뒤에는 오판이 숨어 있고, 오판임을 알며 과장할 때는 책임질 수 없다던데….

국양 자연대 교수ㆍ물리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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