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문제인 집시법, 전·의경제도에 대한 고민 필요

지난해 11월 전국농민대회에서 농민 전용철씨와 홍덕표씨가 경찰 측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후, 정부는 지난 1월 ‘평화적인 집회·시위 문화 정착을 위한 관·민공동위원회(위원회)’를 만들었다. 한명숙 국무총리와 함세웅 신부를 공동위원장으로 22명의 정부 관료와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집회 현장에 관계부처 공무원을 배치해 대화를 유도 하고 ▲불법 폭력시위에 참여하는 단체에 정부 보조금 지원을 제한하는 등 ‘평화적 집회·시위 대책 30대 과제’를 선정하고 부분적으로 실시해 왔다. 그러나 지난 달 1일, 포항건설노조 파업시위에서 하중근씨가 경찰 과잉진압으로 사망하는 등 시위현장에서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위원회가 내놓은 대책에 대해서도 일부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시위대의 폭력 통제에만 치중=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박진씨는 “위원회가 내놓은 대책들이 폭력시위자에 대한 배상청구 실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위반자에 대한 처벌 강화 등 폭력시위자 처벌에만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의 폭력진압에 대한 예방책은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국무조정실 최광용씨는 “폭력시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위원회의 취지”라며 “경찰의 폭력진압은 위원회에서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소음규제 강화 ▲폴리스라인 침범엄단 ▲폭력시위 단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관리 등의 대책에 대해 인권단체 연석회의는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의사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고 집회·시위의 권리를 억압하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최광용씨는 “오히려 처벌을 강화하라는 시민단체도 많아 합의점을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근본문제인 집시법과 전·의경 체제에 대한 재고 필요=집시법 제8조2항에 의하면 같은 장소에서 이중집회는 금지돼 있다. 상대측에서 먼저 집회신고를 하면 집회를 열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월 10일 한미FTA 협상이 열린 신라호텔 주위에서 시민단체들이 반대 집회를 하려 했으나, 신라호텔 측에서 ‘환경정화 및 교육질서 캠페인’이란 명목으로 미리 집회 신고를 하는 바람에 열지 못했다. 또 국회의사당, 대통령관저 등의 100미터 이내 장소에서 집회가 금지돼 있고 관할경찰관서장은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특정 지역에서의 집회를 제한할 수 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오창익씨는 “집시법은 1962년 군부정권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며 “다른 나라들처럼 행정조례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국 교수(법학부)는 “집시법의 일부가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위로 인해 피해 받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법은 있어야 한다”며 “집회는 허용하되 시간, 절차 등에 대한 제한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시위진압을 맡고 있는 5만여 명의 전·의경 체제에 대해서도 오창익씨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법”이라며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고 경찰 서비스 교육을 충분히 받은 직업경찰·전문경찰이 시위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의경 제도는 1970년 대간첩 작전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전투경찰대 설치법’에 근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위원회 민간위원 임현진 교수(사회학과)는 “차차 전문경찰이 시위진압을 담당해야 하지만 당장 바꾸기에는 경비 문제 등 걸림돌이 많다”며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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