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현 수의학과·03

지난 7월 20일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노조) 노조원 3천여 명이 기숙사가 지척인 노천강당에 무단 진입해 새벽녘까지 심야 집회를 벌였다. 사전 시설 이용 합의가 없었는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학교의 허가 없이 교육시설을 무단 점거하는 것은 교육과 연구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며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학습권, 생활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서울대 학생들과 구성원들은 이 진입사실을 통보받았을 뿐 어떤 의사개진도 할 수 없었다. 총운영위원회는 진입을 찬성하는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본부의 공식 입장 역시 불허였다. 이럼에도 보건노조는 진입 당일 오후, 후문에서 일부 운동권 단과대 회장들과 학생들을 앞세워 트럭을 몰고 들어온 것이다.

보건노조의 무단 진입은 학생 집단 폭행으로까지 이어졌다. 새벽 두시. 소음 등 노조가 입힌 피해는 모두 기숙사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노천강당으로 찾아갔던 총학생회장 대행과 총학 미디어국장은 노조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가 무참히 거절된 것이다. 게다가 보건노조는 이들이 술을 마시고 자해를 하며 난동을 부렸다고 언론에 주장했다. 미디어국장의 혈액검사 결과로 뒤늦게 노조의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졌음에도 서울대 대표자가 취중 난동을 부렸다는 기사는 이미 전국에 타전됐다. 결국 서울대 학생들의 명예는 심히 훼손되었고 바로잡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외부 단체의 놀이터가 된 것은 비단 우리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8월 13일부터 연세대에서 진행되었던 한총련과 통일연대의 ‘8·15 통일축전’ 역시 학교의 행사 불허 입장에 역행한 채 강행됐다. 현재 연세대 학생들은 이를 추진한 총학생회장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고 연세대는 총학에 대한 징계 검토를 하는 등 학내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군부독재 시절 대학은 민주화운동의 산실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운동과 투쟁이 절대선이 아니며,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면 외면 받는 시대다. ‘우리가 옳기 때문에’ 원칙과 절차를 무시해도 된다는 주장은 더이상 합리화되지 못한다. 대학구성원들의 합의 없는 ‘무단 진입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변화해야 할 것은 서울대생들이 아니라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투쟁과 운동이다.

노천강당에서 어느 단과대 학생회장은 보건노조에게 환영사를 했고 민주노동당의 저명한 국회의원 역시 투쟁 승리를 기원했다. 과연 서울대가 ‘총력투쟁 결의대회’와 같은 투쟁판을 벌이는 곳인지, ‘교육과 연구의 장’으로 국가의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곳인지, 우리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 답을 명확하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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