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인 문화의 핵으로 등장한 대안공간은 젊은 작가들의 등용문이며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자본과 권력에 독립적인 대안공간에서 이뤄지는 전시는 실험적이고 비주류적이라 더욱 관심을 끈다. 『대학신문』은 특색있는 대안공간을 찾아 소개함으로써 대안공간의 의의를 살펴보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 대안공간의 형성
1969년 미국 뉴욕의 소호에 문을 연 ‘화이트 칼럼스(White Columns)’는 미술사적으로 최초의 대안공간(alternative space)이다. 이곳은 당시의 범세계적 문화운동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인 작가들이 주류 문화에 환영받지 못하는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한국 미술계에서 대안공간이 생겨난 직접적인 계기는 1997년의 경제위기로 인한 불황이다. 불황은 미술계에도 영향을 미쳐 미술관과 화랑은 대중성과 상업성만을 추구했고, 젊고 실험적인 작가들은 작품을 표현할 기회를 잃게 됐다. 한편 당시는 유학을 통해 대안공간을 접한 유학생들이 대거 귀국하고 엑스포와 비엔날레, 자치단위의 축제, 밀레니엄의 준비 등으로 미술 성장의 환경이 조성된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미술계에서는 자본에 좌지우지되는 전시, 신진작가에 대한 열악한 지원환경 등에 대해 비판적 움직임이 생겼고 이에 힘입어 지난 1999년 국내 최초의 대안공간 ‘루프’가 탄생했다. 루프의 설립자인 전시기획가 서진석씨는 “다양성이 없는 미술계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했다”며 설립 취지를 밝혔다. 이후 대안공간 풀, 사루비아다방 등이 홍대 앞과 인사동에 잇달아 생기면서 현재는 전국에 30여 개의 대안공간이 운영되고 있다.


◆ 비영리성, 실험성, 독립성
대안공간은 주류미술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 만큼 기존 미술관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 김정희 교수(서양화과)는 “미술관은 미술품을 정리해 관객을 교육하며 미술의 역사성을 생산하는 장소지만, 대안공간은 미술가의 활동을 소개하고 관객이 미술과 소통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등 미술의 현재적 의미를 중시하는 장소”라며 두 전시공간을 비교했다.

대안공간들은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진보적인 작가들을 존중하며,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 전시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대안공간이란 비영리성, 실험성, 독립성을 가지는 곳이다. 김정희 교수는 “미술가들과 대안공간 모두에게 비영리성이 적용된다”며 “금전적 요구뿐 아니라 미학적·이념적인 요구 역시 없어야 한다”고 대안공간의 조건을 설명했다.

전시작품의 선정 기준은 각 대안공간의 특성과 디렉터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가의 작품이어야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따라서 대안공간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활동을 하는 젊고 성실한 미술가들에게 유용한 전시공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안공간이 예술가에 대한 복지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진상 교수(계원조형예술대·미술비평)는 “대안공간은 무명의 작가를 보호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유망한 작가를 다루는 공간”이라며 “대안공간으로 인해 젊은 작가들이 현실에 안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 자금난으로 고통 받는 대안공간
비영리를 원칙으로 하는 만큼 대안공간들의 가장 큰 고통은 자금난이다. 실제로 ‘대안공간 풀’은 인사동의 비싼 임대료를 피해 최근 구기동으로 이전했다. 대부분의 운영 자금은 정부의 지원금과 기업이나 미술관의 후원 등으로 이뤄진다. ‘아트스페이스 휴’의 디렉터 김노암씨는 “정부 지원금은 총 운영자금의 30% 수준에 불과하다”며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행사의 미술 작업을 담당해 재정을 마련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전시기획가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생겨난 대안공간에 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의 ‘인사미술공간’이나 (주)쌈지가 설립한 ‘쌈지스페이스’와 같은 곳은 사정이 좀 낫다. 그러나 대안공간의 운영 형태가 어떻든 그 재정적 기반은 아직 탄탄하지 못한 실정이다.


◆ 대안공간, 한국미술계의 대안이 되다
운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안공간은 미술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중 가장 큰 의의는 주류문화에 편승하지 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전시할 공간을 제공했다는 데 있다. 서진석씨는 “대안공간의 전시가 늘어감에 따라 미술관이나 상업화랑 측에서도 비주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으며, 유진상 교수는 “정체돼 있던 한국 미술계에서 신진작가 발굴, 작가들의 평균 연령 감소, 국제적인 추세와 보조맞추기, 미술교육의 현실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대안공간의 역할을 평가했다. 실제로 대안공간이 발굴한 정연두, 함진, 손동현과 같은 작가는 독특한 실험정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파압아익혼」이라는 개인전을 열었던 손동현 작가는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은 작품도 전시가 가능한 점이 신진 작가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또 대안공간은 외양이 비교적 소박하고 권위감이 없으며 전시가 무료로 이뤄지기 때문에 관객입장에서 거부감이 적다는 장점을 가진다. 대안공간이 수수료 없이 미술작품의 유통 기능을 하는 셈이다. 이처럼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가까이 다가간 전시공간이라는 점에서 대안공간은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대안공간의 운영자들은 “행복을 위해 이상을 좇고 있는 중”(‘아트스페이스 휴’ 김노암씨)이라고도 하고 “사람은 완벽한 이타주의자일 수 없지만 물질적인 것에서보다 미술에서 더 큰 만족을 느낄 수 있다”(‘대안공간 루프’ 서진석씨)고도 한다. 이것이 그들이 대안공간을 운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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