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죽음은 모두 노조활동 탄압에 항의한 자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초 두산중공업 배달호씨가 회사측의 파업 손해배상 가압류에 항의해 분신했던 것까지 포함하면 우리 사회의 노사관계에 심각한 경보가 울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IMF를 당하여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기업 역시 존망의 위기에 처하여 있다는 위기감을 노동자 역시 공유하고 있었기에 희생을 감내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상황이 다르다. 파업에 임하는 많은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기업이 상당한 이익을 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혜택이 노동자 쪽으로 전혀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미명 아래 고용 조건만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IMF 이후 노사간 교섭력의 균형은 노측에 불리하게 기울어져 왔다. 노측은 기왕의 교섭력을 잃어 온 반면, 사측은 다양한 공격적 방어 수단을 확보해 왔다. 최근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노조에 대한 파업 손실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 신청은 그러한 공격적 방어 수단의 하나다.

 

 

현재 46개 사업장에 1천4백억 건에 이르는 손배소 가압류 결정이 내려져 있다. 월급 외에 다른 자산과 수입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손배소에 응해야 하는 상황은 큰 부담이다. 여기에 더하여 봉급에 대한 가압류 결정이 내려지게 되면 노동자들의 가계 상황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 노동자들의 연이은 자살이 카드빚에 내몰려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는 서민들의 처절한 상황과 닮은꼴로 느껴지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기업이 노조에 대한 손배소 가압류 신청을 남발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지만, 사안의 정도와 경중을 가리지 않고 파업 노동자 당사자뿐 아니라 입사시 신원보증을 서준 부모나 친척, 친구들에게까지 쉽사리 가압류 결정을 내려주고 있는 사법부에도 문제가 있다. 일반 민사사안이 아니고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의 주요한 축의 하나인 단체행동권에 대한 손배소와 가압류의 남발은 심각한 위헌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지난 29일 법무, 행정, 노동 3개 부처 장관이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현행 손배소, 가압류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로 신원보증법과 민사집행법 등의 관련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것은 환영할 일이다. 끝없는 노사분쟁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도록 균형 있는 개정안이 나오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경제단체들은 손배소, 가압류 제도가 불법파업에 대한 사측의 유일한 대항수단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나, 이번 기회에 노동계와 정계는 힘으로 버티고 극단적 해결방식으로 몰고 가는 불신의 교섭 문화 대신 현명하고 절제된 타협과 협상의 문화가 하루 빨리 정립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정부는 국민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 확충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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