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대학원생의 속내를 들어보니……

이공계 위기론이 대두된 지 오래지만 마땅한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학신문』은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털어놓은 이공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외대학 사례와 이공계 대학원의 변화를 위한 움직임을 살펴봤다.

공대 석사과정 A씨는 오늘도 연구실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매일 아침 9시에 연구실에 나가지만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다. 그러나 연구에만 전념하기도 바쁜 그에게 지워진 짐은 따로 있다.
◆교수와 학생 간의 경직된 관계=“지도교수가 내 인건비 통장을 임의로 사용하는 것을 봤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는 공대 석사과정 B씨. 그는 “교수에게 밉보이면 대학원 생활을 계속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자연대 박사과정 C씨는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스승 밑으로 들어가 절대 복종하는 ‘도제관계’에 비유하며 “일부 연구실 내에는 권위적인 서열제도가 여전히 팽배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원생들이 교수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낼 통로가 없다”며 “연구비 횡령 등 교수의 비리를 말한다 해도 제보자들의 신분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수직적 관계는 연구 범위까지 제한한다. 공대 석사과정 D씨는 “하고 싶은 연구가 있더라도 연구 과제를 교수가 배분하기 때문에 연구에 대한 학생의 선택 폭이 좁다”고 말했다. 공대 석[]박사통합과정 E씨는 “논문 주제가 교수가 원하는 방향과 맞지 않으면 논문이 심사과정에서 통과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개인비서가 없는 교수는 잡다한 업무를 대학원생에게 맡기기도 한다. 이에 대해 D씨는 “학부생 관리, 문건 처리 등 연구 외의 업무를 하느라 꼬박 하루 이틀을 보내는 때도 많다”며 “이런 환경에선 자연스럽게 연구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공대 교무부학장 이건우 교수(기계항공공학부)는 “서울대는 해외대학에 비해 잡다한 업무가 많아 교수 역시 이로 인한 어려움을 겪는다”며 “학교 시스템상의 문제로 대학원생 에게 잔업이 과중될 수 있지만 교수가 개인적으로 잡무를 시키는 일은 드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대학원생이 자신의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창구가 없고 사제간 대화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교수와 학생 모두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족한 지원 및 재정 문제=공대 석사과정 F씨의 월수입은 37만원. 매일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꼬박 연구실에서 일한 대가치고는 턱없이 적은 액수다. 그러나 과외를 하자니 연구 활동에 지장이 생길 것 같아 교수와 동료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그나마 BK21 사업이 시행된 이후 몇몇 대학원생들은 석사 50만원, 박사 90만원 정도의 연구비를 지원받지만 대신 업무량은 몇 배로 늘어났다.
연구실에 따라 교수가 수주한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인건비가 지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프로젝트 명단에 이름을 올린 한정된 수의 연구원에게 주는 인건비를 연구실 전체 20여명의 인원이 나눠갖다보니 개인에게 돌아오는 수당은 자연히 적어진다. 자연대 박사과정 G씨는 “한 달에 연구 지원금을 15만원만 받는 석사생도 봤다”며 “교수 명의로 진행되는 연구 프로젝트에서 받는 인건비가 때로는 대학원생에게 전해지지 않고 실험실 운영비로 쓰이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사정은 박사과정 후 연구원도 마찬가지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연구원이 돼 받는 초봉은 약 200만원이다. 이는 노동자의 평균임금 수준이지만 그동안 투입한 노력과 시간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성과주의가 불러온 그림자=또다른 문제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과주의’로 인해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 당국마저 당장 눈앞에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연구에만 지원을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단기간의 성과만을 추구한 결과, 대학 내 연구주제는 유행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 물리학 박사과정 H씨는 “나노 과학이 ‘뜬’ 이후 모든 물리학 연구실이 나노를 다루기 시작했다”며 “연구 내용이 크게 달라진 건 없어도 ‘나노’라는 이름을 달아야 연구지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는 등한시한 채 당장 실용화 될 수 있거나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주제를 위주로 연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공대 석사과정 F씨는 “교수님이 기업에서 따온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연구를 하는 건지 기업의 하청을 받아 일하는 건지 모를 때가 많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연구를 하고 싶어 들어왔는데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괴롭다”며 “이공계 연구를 산업이 아니라 학문으로 봐 달라”고 토로했다.
최근 서울대는 성과에 따라 교수 연구비를 차등지급하는 등 연구 사업의 결과를 중시하고 있다. 연구평가위원 부단장 채희권 교수(화학교육과)는 “성과물이 없으면 연구생 및 사업단이 퇴출될 수 있다”며 “연구 성과를 엄격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 위주의 연구 평가로 인해 오랜 시간이 필요한 주제가 채택될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남좌민 교수(화학부)는 “장기간의 안목이 필요한 연구가 오히려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도 많다”며 “단기간의 성과만 추구하는 편협한 시각은 과학을 멍들게 한다”고 충고했다.

최민정 기자 junga86@snu.ac.kr  윤수진 기자 youn2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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