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인 교수(환경대학원)

 ‘살기’(to live) 위해서는 ‘사야’(to buy)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불가피한 운명이다. ‘만물의 상품화’ 덕에 모든 것이 소비의 대상으로 바뀐 탓이다. 소비사회의 핵심은 그러나 그것의 경제적 측면이 아니라 문화적 차원이다. 사람들은 차별화된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 명품 욕구는 결코 위선이나 허영으로 쉽게 매도할 사안이 아니다. 비판이 많아질수록 럭셔리 브랜드를 향한 꿈은 오히려 야물어질 뿐이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어느 날 친구로부터 진홍색 빛깔의 실내 가운을 선물 받았다. 새 옷을 입자마자 갑자기 그의 눈에 띈 것은 낡고 오래된 책상이었다. 책상을 새 것으로 바꾸자 이번에는 의자가, 그 다음에는 벽시계가 차례차례 불만스러워졌다. 결국, 불과 얼마 사이에 그는 주변의 모든 것을 새로 사고 말았다. 하긴 ‘벤츠’를 몰면 ‘로렉스’를 차고 싶고 ‘샤넬’을 입으면 ‘티파니’를 끼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문제는 이렇듯 신상품 구매가 한 바퀴를 돌면 다음 번 사이클이 바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디드로 효과’(Diderot Effect)라 부른다.

 럭셔리 소비는 가격 불문(不問)이다. 그보다는 명품에 접근하는 사람의 숫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명품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게 되면 그것의 원래 소유자들은 또 다른 명품을 찾아 나선다. 이른바 유행의 ‘누수효과’(Trickling-down Effect)는 사회계층 간의 ‘쫓고 쫓기는’(chase and flight) 게임을 반복시키게 된다. ‘과시적 소비’의 특징은 물건의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명품의 가치는 값이 비쌀수록 아무나 쉽게 살 수 없다는 점에서 더 빛을 발한다. 『유한계급론』을 쓴 토스타인 베블런의 이름을 따 경제학에서는 이를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 부른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은 명품 소비사회에서 영원히 소외되고 낙오될 수밖에 없는가. 안타깝게도 ‘불편한 진실’은 일단 그렇다는 것이다. 행복의 근원은 마음이라며 이른바 ‘존재적’ 삶과 ‘소유적’ 삶 가운데 전자를 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는 ‘정의상’ (定義上, by definition) 후자 쪽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란 기본적으로 ‘소유’함으로써 ‘존재’하는 체제인 것이다. 

 남들 앞에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명품추구 사회는 이러한 인간의 원초적 욕구가 현대 자본주의를 만나 빚어낸 새로운 유행일 뿐이다. 그렇다면 명품 소비사회에 대한 감정적, 즉흥적인 대응은 하등 유익하지 않다. 인간의 기본 성향과 자본주의의 근본 생리를 원초적으로 부정한다면 명품 소비사회는 부담이자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나마 우리가 출구를 발견하는 것은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긍정’이 아니라)할 때이다. 바로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소유와 존재 사이의 실존적 결단을 제대로 한번 시도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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