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내면 국가폭력의 장본인도 기념해 줄 것인가

법대 15동 건물 1층에 최근 새로이 로비가 개관했다. 로비에는 기부자인 홍석규 보광그룹 사장의 선친인 「중앙일보」 창업주 홍진기의 호를 따 ‘유민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홍진기가 생전에 범한 역사적 과오들에 비춰볼 때 ‘유민홀’이라는 명칭은 부적절하다. 홍진기는 이승만 정권에 부역해 국가폭력에 일조한 ‘헌법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경성제대 법문학부 출신으로 일제하 판사였던 홍진기는 해방 후에도 승승장구하여 1958년부터 1960년 3.15 부정선거 때까지 법무장관에 있었다. 이 기간은 이승만 정권이 ‘국가보안법 파동’으로 언론을 탄압하며 조봉암 등 정권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국가보안법을 빌려 제거한 시기였다. 국가보안법 파동을 비판한 「경향신문」은 1959년 강제 폐간되기에 이르렀다. 홍진기는 이때 이승만을 도와 법무장관으로서 국가 폭력에 앞장선 권력의 ‘주구(走狗)’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홍진기는 3.15 부정선거의 수습 차원에서 최인규의 후임으로 내무장관이 되고서도 ‘마산 시위의 배후에는 공산당이 있다’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 부정선거에 대한 시민의 정당한 항거를 ‘빨갱이’로 몰아 압제하려 한 장본인이다. 4.19 혁명 진행 과정에서의 시민들에 대한 발포에 있어서도 홍진기는 지휘권자로서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경력의 소유자인 홍진기는 5.16 쿠데타로 4.19가 부정되자, 이병철의 후원을 받아 재기에 성공, 1965년 「중앙일보」를 창간했고 「중앙일보」는 이후 30여 년간 ‘삼성가(家)’의 논리를 대변하며 한국 언론계에 재벌 언론의 폐해를 끼쳐왔다.

 

 
이러한 홍진기의 전력을 알고 나면 법대 1층 입구에 그를 ‘기념’하는 문구를 붙이고 ‘유민홀’이라는 명칭을 써도 좋을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기부자를 존중한다면 ‘홍석규 홀’이나 ‘보광 홀’로 명명하는 것으로 족하다. 법의 힘을 빌려 국가폭력에 앞장선 사람일지라도 그 후손이 돈으로 명예를 살 수 있다는 전례를 서울대 법대에 만든다면, 법대는 ‘16세기 로마 교황청’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 의식을 망각하지 않는 법대인의 지혜가 모여야 할 시점이다.

 

송영훈 법학부ㆍ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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