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죽음의 기록

부고(訃告)
지난 1일(수) 밤 9시 대구 파티마병원 장례식장 201호. 고(故) 이정자씨(76)의 영정이 놓여있다. 그는 1일 오후 2시 11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서울에서 출발한 셋째딸 인광순씨(47)가 막 빈소에 들어섰다. 눈시울을 붉히고 있던 언니 인마리아씨(52)가 일어나 맞는다. 헌화와 기도를 마친 인광순씨는 영전으로 다가가 어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2일 새벽 2시. 맏아들 인광운씨(57)가 아버지 인태송씨(80)와 함께 빈소에 도착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은 아내의 영정 앞에서 끝내 눈시울을 붉힌다. 빈소의 공기가 순식간에 젖어든다. “58년 동안 나와 함께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망부(亡婦)의 탄식. “얼마 전 병원에서 만나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입맞춤을 해 주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네….” 흐느끼는 노인의 어깨가 들썩인다.

어머니의 빈소에서 오랜만에 조우한 육 남매는 둘러앉아 장례절차를 상의하기 시작한다. 장례방식은 화장으로 결정했다. 유골은 왜관의 한 납골당에 안치하기로 했다. 부의금을 관리할 사람은 둘째 외손자로 결정했다. 접객을 위한 음식과 도우미는 장례식장에서 제공받기로 했다. 이별을 위한 준비를 마치자 산 자들은 다시 그들만의 시공(時空)으로 돌아온다.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죽음을 잊는다.

입관(入棺)
2일 오후 1시. 유족들은 지하 입관실로 향한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염습대 위에 차갑게 누워 있는 주검을 본 맏딸 인마리아씨가 벽에 기대 오열한다.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셋째딸 인광순씨는 어머니의 뺨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린다. “우리 엄마, 꼭 자는 것 같네. 엄마, 눈 좀 떠봐….” 주검은 눈을 감은 채 끝내 움직이지 않는다.

산 사람은 부고로만 전해들은 죽음을 마침내 주검으로 만난다. 주검을 입은 죽음이 자신의 현존(現存)을 명백하게 선언한다. 막내아들 인광삼씨(39)가 “우리 엄마 금방이라도 깰 것 같아”라고 말하지만 주검은 눈을 뜨지 않는다. 유족들은 주검을 보고서야 어머니의 죽음을 실감하고 크게 놀란다. “엄마, 우리 엄마….” 죽음이 끝끝내 산 자와 죽은 자를 영영 갈라놓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족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육 남매를 낳은 주검은 미라처럼 말라붙어 뼈만 남았다. 앙상한 손과 팔에 남은 주삿바늘 자국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장례지도사 임석만씨(45)와 백은숙씨(38)가 염을 시작한다. 흐느낌이 들려온다. 임석만씨는 “고인의 영혼은 이제 하늘에 올라가셨고, 지금은 편안하게 주무십니다”라고 위로한다. 두 장례지도사가 주검의 머리를 감기고 얼굴을 씻기고 몸을 닦는다. 주검이 타인의 손놀림에 따라 맥없이 흔들린다.

장례지도사들이 능숙한 솜씨로 수의를 입힌다. 주검은 선물이 포장되듯 차례차례 속바지와 치마, 저고리를 입고 버선을 신고 장갑을 끼고 적삼을 두르고 띠를 갖춘다. 인마리아씨는 “우리 엄마 예쁘게 보내주세요”라며 울먹인다. 죽음의 참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앙상한 육체에 옷을 입히는 일은 유족에게 그나마 위안이다. 백은숙씨는 주검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임석만씨는 빗을 들어 머리카락을 단정히 빗긴다.

주검을 들어 관에 눕힌다. 베개를 베이고 이불을 덮고 머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향을 가득 채운다. 백은숙씨가 국화 꽃송이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유족에게 건넨다. 유족들은 주검 위에 한 송이씩 꽃을 올려놓는다. 통곡소리가 높아진다. 둘째딸 인광희씨(48)가 서럽게 운다. 손녀들이 할머니를 부른다. 문득 짚은 주검의 이마가 소스라칠 정도로 차갑다.

“이제 작별인사를 할 시간입니다”라고 임석만씨가 말한다.한세영광교회 김병옥 목사(49)의 짤막한 설교가 끝났다. 저마다 흐느끼듯 찬송가를 부르며 작별인사를 건넨다. 인광순씨는 어린아이처럼 앙앙 울며 주검의 얼굴에 볼을 부빈다. “엄마, 잘못했던 거 다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던 거 다 용서해 주세요…. 엄마….” 세 딸이 모두 통곡하며 주검을 보듬는다.

인광운씨가 “어머니, 사랑했어요.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라며 장미 다발을 주검의 가슴에 안겼다. 둘째 아들 인광섭(44)씨가 소리 내어 운다. 이윽고 관뚜껑이 닫혔다. 십자가가 그려진 관포가 덮인다. ‘사모전주이씨지구(師母全州李氏之柩)’라고 쓰인 붉은색 명정(銘旌)이 그 위로 또 덮인다. 아들과 손자들이 영구를 들어 냉동고 속에 안치한다.

영결(永訣)
3일 새벽 6시. 발인예배가 끝났다. 큰손자 인희영씨(28)가 할머니의 영정을 들고 빈소를 나선다. 산 자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영구를 따른다. 차가운 11월 바람 사이로 사무칠 듯한 가락이 스민다.

도착한 곳은 대구시립화장장. 화장이 시작되는 시각은 8시다. 유족들은 영정을 앞세우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때 주차장에 택시 한 대가 도착한다. 택시에서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나타나 두리번거린다. 아내와의 영결을 지키러 나온 인태송씨다. 노인은 말없이 다가와 영정을 바라본다. 고생스러운 목회를 58년 동안 뒷바라지한 아내의 얼굴이다. 늘 고마웠고 사랑스러웠던 아내의 얼굴이다.

1번  예식실에서 마지막 영결예배가 열렸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영구를 보며 인태송씨는 연신 눈물을 흘린다. 조객들이 이를 보고 모두 안타까워하며 슬퍼한다. 10여 분의 짧은 영결예배가 끝나자 영구가 6번 화장로 앞으로 천천히 옮겨진다. 이젠 정말 이별이다. 유리창 너머로 서서히 방향을 트는 관을 바라보는 유족들. 통곡과 오열이 뒤섞인다. 신도들이 소리를 모아 찬송가를 부른다. ‘보아라 즐거운 우리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화장로의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천천히 관이 들어간다. “엄마…, 엄마!” 하는 외침. 문이 굳게 닫힌다.

고인명: 이정자, 시작시각: 8:04, 종료시각: 9:36. 기다리는 동안 산 자들은 잠깐 다시 그들만의 시공으로 돌아온다.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죽음을 잊는다. 9시 36분. “이정자씨의 화장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화장로를 열자 작은 뼛조각 몇 개가 남았다. 일흔여섯 해 전 태어난 한 사람의 삶이 조그마한 납골단지에 담겼다. 셋째 외손자가 외할머니의 유골을 품에 안고 화장장을 조용히 걸어나온다. 11월 가을하늘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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