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잘못·재단비리 알리면 재심사 탈락

부당 해임돼도 사립대에 재심사 강제할 수 없어

한 사립대의 ㄱ 교수가 대학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사유는 당시 대학에서 실시한 본고사 문제에 오류가 있는 것을 발견해 이를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의 결정에 불복한 교수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소청위)에 재임용재심사를 청구했다. 소청위는 재임용심사의 기준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대학에 재심사를 권고했다. 하지만 사립대는 소청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버텼다. 현행법상 소청위의 권고를 무시하는 사립대를 제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ㄱ 교수는 지방법원에서 결국 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갔다. 결국 10여 년 동안 ㄱ 교수는 무직상태에서 막대한 소송비용까지 지불했다.

이처럼 대학의 비리를 밝히거나 입바른 소리를 한 교수들이 부당해임의 굴레에서 고통받고 있다. 부당해임이란 보통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총장 평가, 습관적인 불평·불만 등 부당한 기준에 의해 탈락하거나 탈락한 후 재심사 요청을 일방적으로 거부당한 것을 뜻한다.

◆교수재임용제의 역사와 악용 실태=보통 ‘교수재임용제’라고 불리는 ‘기간제임용제’는 1975년 도입 당시 표면적으로는 대학교원의 자질저하를 방지하고자 ▲연구실적 ▲학생지도능력 등을 심사해 교수 평가의 지표로 활용하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교육특위위원장 주경복 교수(건국대 불어불문학과)는 “도입 취지와 달리 교수재임용제는 유신독재정권이 정권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 됐다”며 “사립대의 경우 재임용의 심사 권한을 임용권자의 재량에 둠으로써 재단의 전횡에 항의하고 대학운영의 민주화를 주장하는 교수들을 대학에서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2000년 서남대는 설립자 이 모씨의 비리로 교수협의회와 갈등이 깊어지자 교수협의회 교수 5명에게 교수협의회 해체 각서를 요구했다. 그러나 교수들이 이를 거부하자 재임용 심사도 거치지 않고 해임했다.

2003년 2월 헌법재판소는 사립학교법의 교수 기간제임용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 따라 2005년 법률도 개정됐다. 학교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교수는 교수 재임용 소청을 담당하는 기관인 교육부 산하 소청위에 재심사를 청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정 후에도 문제는 여전히=하지만 국공립대의 경우 소청위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사립대의 경우 결정된 내용을 따라야 한다는 강제 규정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소청위 측은 “재임용과 관련된 객관적인 기준과 항목을 대학 측에 제시하지만 어디까지나 권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2006년 4월 현재 소청위에서 결정이 내려진 71건의 사건 중 대학의 재임용재심사 거부 처분을 취소하는 결정이 내려진 것은 총 35건이다. 이 중 복직한 교수는 2명으로 그것도 국·공립대인 인천대와 한경대의 교수 뿐이다.

이에 대해 얼마 전 교수재임용 거부 취소 처분을 받은 기독교재단의 강남대 측은 “대학 나름의 기준도 존중받아야 한다”며 “창학 이념에 반하는 교수를 다시 채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손해배상도 문제다. 재임용에 탈락한 사립대 교수는 무직 상태로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하지만 대법원은 이들을 사립학교법상 교원으로 인정하지 않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는 상태다.

한 예로 2006년 3월 대법원은 아주대 윤 모 전 교수에 대해 “정관이나 계약에서의 규정 혹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임용기간이 만료된 사립학교 교원은 즉시 대학교원 신분을 상실하는 것”이라며 재임용 탈락 기간 동안 교수의 지위가 그대로 유지됐음을 전제로 한 임금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대안은?=전국교수노조 교권쟁의실장 이성대 교수(안산공대 정보통신과)는 “사립대의 경우 총장학과장 평가와 같이 자의적인 평가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임재홍 교수(영남대 법학부)는 “특별법이나 소청위에서 결정된 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사립대를 강하게 처벌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공립대의 교수든 사립대의 교수든 동일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며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해 사립대 교수도 동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사립학교법’상 교수의 지위에 관한 규정을 삭제한다면, 소청위의 결정에 사립대가 의무적으로 따르게 돼 교수의 신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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