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호 교수 (사회대 외교학과)

한 달쯤 전이었던가, 『대학신문』 편집장으로부터 원고촉탁을 받고는 내내 주제에 대해 고심했다. 전공분야를 살리려면 미·중관계, 중국의 부상, 북핵 문제, 혹은 동북아 질서 등에 관한 글을 써야 할 터인데 왠지 그리 딱 내키지가 않았다. 이번 글만큼은 대학에서 이제 막 배움과 삶을 함께 터득해가는 학부생들에게 늘 전하고 싶었던 마음속의 얘기를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 개봉했던 영화로 신하균이 주연한 ‘예의 없는 것들’을 본 적이 있다. 킬러의 본능을 한껏 자극할 수밖에 없는 기본예절 결여의 인물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를 절감케 해주는 블랙코미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관악에 둥지를 튼 지 올해로 11년째를 맞는 필자 또한 적잖은 수의 ‘예의 없는’ 학생들과 마주치면서 그동안 그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꾹꾹 담아왔던 것 같다.



우선 문(門)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무거운 쇠문을 열고 들어가던 사람이 자기만 지나가고 그냥 손잡이를 놓아버린다면 바로 뒤따라 들어오던 사람은 어떻게 될까? 어찌 보면 지극히 간단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잠시만 손잡이를 잡고 기다려주는 조그만 ‘배려’를 과연 우리는 생활 속에 녹여가며 살고 있는지 한 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면담시간에 찾아온 학생들이 얘기를 끝내고 일어나면서 앉았던 의자를 다시 제자리에 집어넣고 가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세어본 적이 있다. 그 수가 1/3도 채 안 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만 편안히 앉으면 그뿐 원래의 상태가 어땠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면 이들이 과연 환경이나 생태계의 보호에 대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을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최고 지성의 요람이라는 서울대의 사회대 동아리 방에 가보면 먹다 남은 음식 그릇과 마구 버린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바로 옆 강의실에서 동료와 친구를 위한 강의가 진행 중임에도 복도에서는 학생들끼리 큰 소리로 수다를 떠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주변을 생각하고 동료들을 배려하며 사는 삶을 익혀가고 있는가?



학기 초 발제를 하기로 약속하곤 도중에 아무런 얘기도 없이 조용히 수강을 포기해 막상 당일 교수와 학생들을 실망시키고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학생들도 주변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각종 고시 열풍과 유학 준비로 도서관들이 넘쳐나지만 그 많은 책상을 메우고 있는 학생들은 과연 어느 정도의 예의와 상식을 갖추고 있을까? 고시에 합격하고 또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돌아와도 이렇듯 동료와 친구 및 주변에 대한 최소한의 예절과 배려가 결여되어 있다면 과연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과 TV에 보도되는 부패와 부정의 선두에 선 사람들이 바로 원칙에 의한 삶과 남에 대한 배려보다는 사사로운 자신의 이익만을 찾아다니는 ‘예의 없는 것’들이 아닐까? 이제 열정에 예절을 좀 보태는 노력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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