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시행돼도 불법체류 불씨 그대로

▲강제추방을 걱정하면서도 또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배식을 기다리는 이주노동자들(왼쪽)과 과로, 산재 등으로 인한 사망자 서류들 © 강정호 기자

2001년 한국에 온 파키스탄인 알리(22)는 경기도 소재 공장에서 일을 하다 오른쪽 손목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36시간 동안 계속된 과중한 노동으로 인해 일어난 산업재해였다. 그러나 불법체류자인 알리는 치료비는 커녕 3개월간 밀린 월급 186만원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고 말았다. 억울하지만 신고하는 날에는 본국으로 강제 추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연수제 폐해로 불법체류자 20만여 명

법무부에 따르면 알리와 같은 불법체류자의 수는 2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현재 시행 중인 산업연수제도의 문제점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하루 12~16시간을 일하는 산업연수생들이 받는 월급이 4~20만원에 불과한 현실에서, 80%가 넘는(2002년 12월 시점) 이주노동자들이 50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외부 사업장으로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정부는 지난 8월 ‘외국인노동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을 통과시키고 내년 4월 시행을 공표했다. 이번 법률안은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 병행 실시 ▲내국인과의 동등 대우 ▲구직자 모집과 송출은 국가 또는 공공기관이 담당할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 중 특히 고용허가제의 도입은 이주노동자들의 신분을 ‘연수생’에서 ‘근로자’로 승격시켰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산업연수생제도의 가장 큰 폐해로 지적되던 불법체류자 양산문제를 현행 고용허가제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말(네팔) 민주노총 평등지부 대책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오는 가장 큰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라며 “임금 체불, 인권 유린 등의 사유로만 작업장을 옮길수 있도록 규제하는 현행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 제도와 마찬가지로 불법체류자를 양산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가 되더라도 임금이 높은 사업장으로 이탈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강제출국 규정 보완 및 이주노동자 자율권 보장 시급


고용허가제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체류기간 4년 이상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10만여 명에 이르는 체류기간 4년 이상의 이주노동자들을 강제출국시키기로 하고 오는 15일부터 강력 단속할 방침이다. 그러나 수백만원을 들여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단속을 피해 숨을 것으로 예상돼 불법체류자 문제의 악순환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 고용정책과 최태호 사무관은 “이번 법안에는 내국인 근로자의 취업기회를 보호하고 외국인의 정주화 현상을 막자는 주장이 반영돼 있다”며 “4년이라는 기준은 입국 5년이 넘은 외국인에게는 시민권을 주는 국제적 관례를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흥식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이행보장각서(MOU)를 인력 송출국과 체결, 자진 출국자에게 재입국을 보장하는 것 등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체류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주장도 있다. 민주노총 이상학 정책국장은 그 구체적 방안으로 노동허가제를 제시한다. 이주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을 정부가 결정하는 고용허가제와는 달리 노동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포함한 노동권을 보장한다. 이를 통해 인권유린, 노동착취의 문제가 해결되면 불법체류자는 자연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조흥식 교수는 “민족주의적 관점보다는 세계인의 관점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며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이 꺼리는 3D업종에 주로 취업, 국가 경제에 도움을 주는 꼭 필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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