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강원 교수(환경대학원ㆍ환경계획학과)

정년을 앞두고 그동안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몸 담아온 계획분야의 발전상이 주된 관심이다. 흔히들 이론과 현실이 괴리가 있기 마련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계획계(도시ㆍ건설ㆍ교통)의 정책현실은 지난 한 세대동안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해 온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 그동안 정책 실제에 직ㆍ간접으로 영향을 끼쳤을 터이기에 반 평생을 몸 바쳐온 학계의 책임도 없다고 부인할 수 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간 이해를 좌우하는 경제사안은 정치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후진사회일수록 그 정도는 심하다. 특히 공간경제(부동산ㆍ도시ㆍ교통)문제는 가장 민감한 정치경제 사안이다. 따라서 계획과정에서 납득할 수 없는 사례가 있다고 해서 자탄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명맥이나 유지해 온 우리의 계획과정이 참여정부 들어서는 노골적으로 무시되고 그 풍조가 한층 구조화된 것이 문제다. 균형발전을 앞세워 나눠 먹기식으로, 민주주의를 앞세워 인기투표식으로, 참여정부라고 하면서 독선으로 국토계획을 재단하는 것이 큰 문제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사회발전에 가장 실질적인 공헌을 한 학문이었다고 평가 받아왔던 계획학의 자부심이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 일순간 무너져 버린 것이다.

법으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전문 법조인의 기능이 필수이듯 공공정책의 핵심인 계획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의사결정자가 전문(계획)가의 독립적 기능을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 프로정치가에 속하는 의사결정자가 기술적인 공간경제 문제에 전문성을 갖추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국가경쟁력의 밑바탕이 되는 국가교통체계는 효율성을 위해 장거리ㆍ고속철도와 중거리ㆍ중속 교통수단을 보완적으로 계획해 균형된 접근성을 제공하면서 국가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중거리ㆍ중속수단보다 건설비가 수 만배나 비싸게 드는 고속ㆍ장거리 철도를 건설하여 중거리ㆍ중속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불합리한 짓이다. 경부고속철도의 교차환승역과 역간거리 결정에 참여정부가 지역이기 투표방식으로 종지부를 찍은 처사는 그렇지 않아도 저효율로 각인된 한국철도의 백년대계에 큰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또 최근에는 공사에만 수조원 이상이 들어가는 동남권 국제공항의 이설문제를 대통령이 지방순시에서 공약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교통의 효율성과 부동산개발 등의 편익을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할 주무부처는 아직 분석 이전의 단계다. 노무현정부가 이처럼 대형국책사업을 다루는 것은 분명 우리나라 계획행정의 파국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행정수도가 나오더니 더 나아가 행복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 계획가가 들어도 현란한 이름을 붙여 수십 년에 걸쳐 실현이 될까 싶은 청사진을 전 국토에 도배하니 방방곡곡이 지가상승에 휩쓸려 국가경쟁력은 허물어진다. 얼마 전 극에 달한 아파트값 폭등은 그동안 엄청나게 풀린 토지보상금이 일조했다는 설이 있다. 계획과정에서 간과할 수 있는 실수 정도가 아니라, 계획의 합리성과 타당성, 실현단계, 실패의 부작용 등에 관한 계획의 기본을 아예 무시하고 날뛰는 현실을 보니 우울증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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