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현 법학부ㆍ06

음악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노래 부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 감정의 격정을 음악 없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음악으로 사랑을 하기도 하고, 인종차별적 멸시에 춤과 노래로 힘을 얻기도 한다. 이들이 바로 영화 「드림걸즈」의 주인공(에피, 디나, 로렌)이다. 1960년대를 풍미했던 흑인 여성 그룹 ‘슈프림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들의 이야기는 음악과 함께 하기 때문에 더욱 가슴을 파고든다.

「드림걸즈」에 나오는 모든 곡은 등장인물들의 인생 그 자체다. 그들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감정을 노래로 승화한 것이다. 꿈을 찾아나설 때, 사랑의 감정을 느꼈을 때, 믿었던 사람에게 버림받았을 때 등 사랑과 증오, 안타까움, 설렘의 모든 감정이 노래를 통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된다. 영화 속에서 음악은 두 갈래의 흐름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전반부의 음악은 꿈을 향해 전진하는 소녀들의 활기찬 당당함이, 후반부의 음악에는 인물들 간의 갈등과 격정이 담겨 있다.

여성 트리오 드림걸즈의 무명 시절 이름은 드림메츠였다. 이들은 커티스 테일러 주니어와의 만남을 계기로 연예계에 데뷔한다. 이후 커티스는 드림걸즈가 흑인만의 무대에서 벗어나 백인을 상대로 하는 라스베이거스, 시카고의 주류무대로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결국 드림걸즈는 수십 개의 히트 곡을 내놓고 연예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게 되는데, 당장이라도 스크린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신나고 경쾌한 노래가 계속 이어진다. 이들이 대중문화계를 휩쓸 수 있었던 건 노래실력과 음악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뒤에서 대중들의 기호를 읽어내고 그것에 맞게 그들의 노래를  멋드러진 상품으로 포장해낸 커티스의 역할이 컸다. 무명 시절의 드림걸즈는 춤동작이 통일되지도 않고 각자의 개성대로 자유분방하다. 반면 커티스의 손을 거친 이후의 드림걸즈는 서로 동작이 기가 막히게 딱딱 들어맞는다.

후반부의 음악은 대부분 격정적인 감정을 노래하는 소울풍의 곡이다. 드림걸즈가 주류 음악계에서 성공하려면 튀지 않고 보편적인 목소리로 부드럽게 노래해야 했으며, 각자의 개성보다는 하얀 피부와 가녀린 몸매를 내세워야 했다. 커티스가 제시하는 이 공식에 에피는 반항하고 결국 드림걸즈에서 추방된다. 커티스가 키운 또 다른 가수 지미 역시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죽음을 맞는다. 계속되는 갈등으로 그들의 음악은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회한의 소리가 된다.

영화는, ‘노래는 잘 팔려야 한다’는 커티스의 논리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묘사하는 척하면서 동시에 극명하게 대립되는 인물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를 비난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Only One Night’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부분이다. 이 노래는 지미의 죽음을 접한 에피가 참담한 심정으로 작곡하고 부른 것인데, 커티스는 이를 도둑질해 다른 버전으로 만들어 디나에게 부르게 한다. 백인 남성의 기호에 맞춘 디나의 노래는 과연 화려하지만 아무런 감정이 없다. 개성 없이 부드럽기만 한 목소리와 멜로디는 슬픈 가사와는 상관없이 흥겹기만 하다. 디나의 노래는 현대인들의 획일화된 기호와 닮아있다. 반면 에피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절제된 증오와 지미에 대한 그리움은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심장을 울리는 에피의 목소리야말로 저항정신으로 무장했던 초기 흑인음악의 영혼을 노래하는 소리일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비욘세(디나)의 완벽한 미모보다는 제니퍼 허드슨(에피)의 노래가 이어지기를 기대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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