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길 (행정대학원 박사과정)

봄을 봄같지 않게 만드는 현실의 부조리, 부조리들···
“당신이 꿈꾸는 현실과 비현실은 무엇인가?”

 

이 커다란 학교에서도 북방 구석에서 살다보면 일부러 짬을 내어 나들이라도 하지 않으면 당최 이 산중에 봄이 왔는지 여름이 왔는지도 모르고 살게 된다. 꽃을 보니 정말 봄이구나. 그러나 동시에 늙은이마냥 주둥이로 새어나오고 마는 상투적인 탄식, 봄은 봄이로되 봄같지 아니하도다.

하기야 옛적 한나라 왕소군이 얼어붙은 흉노의 땅에서 눈물 섞어 노래한 이래, 어느 적에 봄이 봄같은 적이 있기는 있었을까? 양귀비와 향락에 빠진 문화와 예술의 황제, 당나라 현종 때가 봄이었을까? 조선을 중흥시켰다고 칭송해 마지않는 효심 깊었던 정조가 똑똑한 다산의 보좌를 받으면서 인자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굶주린 백성들의 ‘격쟁’을 들으러 화성으로 행차할 때마다 수백 가마의 쌀과, 수백 통의 참기름을 거두어들인 그 때가 따뜻한 봄이었을까?

부국강병을 꿈꾸었던 왕들과 그 일족들이 먹고 마시고 뱉었던 그것들은 누구의 살과 기름이었을까? 역사상 없었을 놀라운 생산력을 갖춘 자본주의 체제에서 굶주리는 인민들은 도대체 몇 십억명이며, 또 지난 겨울 아름다운 서울 거리에서 얼어 죽은 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한국전력이 날마다 내뱉는 노래, ‘빛이 있어 세상은 밝고 따뜻해~’에서 겨우 아랫목쯤이라도 데울 전기 요금도 못내 장애인이 얼어 죽은 지는 얼마나 되었던가? 그러나 일본에 뒤지는 판에 중국이 쫓아오는 악몽 속을 밤낮으로 헤매는 ‘샌드위치론’자들, ‘추격-동원론자’들에게 이런 일들은 예외적인 사건일지도 모르겠다. 국민이 독감에 많이 걸리면 기쁘게도 국민소득은 올라가게 되는 기이한 계산법이 오래도록 다스리는 나라에서, 그 ‘쓸모 없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보다는 수 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한 사람의 천재’를 발굴하는 일이 더 중요할 터이다.

교육도 ‘산업’이 되고, 아픈 이를 치료하는 것도 ‘산업’이 되고, 마실 물을 대는 일마저 ‘산업’화 하는 시대인데. 그렇지, 어느 학회에서 이러저러한 산업화나 시장의 논리를 비판하는 논자를 두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너무도 쉽게 조롱하던 그들을 잊으면 안 되지.

그러고 보니 제 코가 석자인 주제에 남 이야기할 때가 아닌 것이 학위 한답시고 먹고 살기도 바쁠 텐데 순진하게도 덜컥 결혼을 감행하고는, 돌아서면 눈물 나는 자식까지 갖게 된 마당에 ‘시대에 뒤떨어진’ 그런 사고방식이라니. 버클리를 제하면 미국 박사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배출했다는 서울대가 낳은 그 인물들이 우르르 돌아오기 전에, 뭔가 ‘경쟁력’ 있는 결과를 어서 내놓지 않으면 안 되겠지. 아차하면 서울대나 되니 6년이지 10년이 넘어 석궁을 쏜다한들 아무도 관심 가지는 이 없는 귀찮은 돌부리 신세가 되고 말겠지? 강남 출신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진다는 서울대에서, 제 출신 계급을 극복하고 존재를 배반해내야 한다는 사르트르의 고독한 지식인의 책무 따위를 논하는 풍경을 그리는 것도 허망한 일이겠지?

때는 삼월이건만 날카로운 바람이 화살처럼 새어들어 당신이 꿈꾸는 현실과 비현실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오늘은 봄을 찾아 뒷동산이라도 헤매야 할 듯싶다. 신동엽의 노래처럼 정말 봄이 뒷동산까지 와서 호시탐탐 기회를 보며 잠시 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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