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성
경제학부 석사과정

페루나 볼리비아 같은 안데스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감자를 팔고 있는 좌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언뜻 보기에도 색깔과 모양이 다른 여러 종류의 감자들을 한데 모아놓고 팔고 있다는 것이다. 한 감자밭에서도 여러 품종, 여러 형질의 감자를 한꺼번에 재배하다 보니 시장에서도 빨간 감자, 파란 감자, 동그란 감자, 울퉁불퉁한 감자 등이 한데 어우러져 팔리는 것이다.

품종이 다양하지 않았다면 안데스가 원산지인 감자는 지금처럼 전세계에 뿌리내려 인류의 식량문제 해결에 큰 공을 세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 잡초가 자랄 수 있는 땅이라면 수천여 종의 감자 중 적어도 몇 종은 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안데스 지역 국가들의 감자 생산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기후 자체도 문제겠지만 여러 품종의 감자를 동시에 재배하는 것이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제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왜 안데스 지역 국가들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은 품종의 감자만을 집중적으로 재배하지 않은 것일까.

여러 품종을 동시에 재배하는 것은 지력 유지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한다.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나 병충해로 특정 품종의 수확량은 떨어질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아 안정적인 생산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품종의 다양성이 생산량을 일시적으로 극대화하지는 못하더라도 생산의 장기적인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셈이다.

감자와 함께 인류의 식량문제 해결에 큰 공헌을 한 옥수수는 어떨까. 멕시코가 원산지인 옥수수 역시 그 품종이 수천여 종에 달하며 전 세계로 재배가 확산됐다. 하지만 옥수수는 대규모의 기업식 재배가 가능해 국가별 생산성의 차이가 매우 크다. 미국의 단위면적당 옥수수 생산량은 멕시코의 4배가 넘으며, 멕시코가 1톤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일수가 17.8일인데 반해 미국은 단 1.2시간의 노동일로 같은 양의 옥수수를 생산한다고 한다.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이후 유전자가 조작된 미국산 옥수수가 멕시코 전역을 덮치고 농가를 황폐화시켰다. 다양했던 멕시코의 옥수수 품종은 생산성이 높은 유전자 조작 옥수수에 자리를 넘겨주고 점차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반면 미국, 유럽 등의 거대 종묘회사들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다양한 식물의 품종을 수집하고 이를 독점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농업에서 생산성뿐 아니라 다양성 그 자체가 잠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적화’를 강조하는 경제학에서도 다양성의 가치는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투자이론에서도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하여 위험을 분산하는 것은 기본이다.

한·미FTA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협상이 진행될수록 졸속 추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 것만을 고집하겠다는 생각도 문제겠지만, 경쟁력 있는 산업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위험하다. 국제적 분업에서 한국이라는 텃밭에 생산성이 높은 단일 품종만 키우면 될 것인가. 다양성의 가치를 산업과 사회의 측면에서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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