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서평 - 『옥시덴탈리즘』(이언 마루어·아비샤이 마갤릿, 민음사) vs. 『옥시덴탈리즘』(샤오메이 천, 강)

왕따와 우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타자화된 대상’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타자화된 대상은 결코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수 없다. 왕따처럼 철저히 외면당하거나 우상처럼 맹목적으로 숭배 받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대상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이성적인 비판을 할 수 없다.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도 판단의 대상을 타자화하는 한 사례다.

옥시덴탈리즘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동양문명을 철저히 타자화하는 오리엔탈리즘과 달리 옥시덴탈리즘은 서양문명을 타자화해 바라본다. 어느 쪽이든 간에 동·서양을 차별화해 본다면 이들 두 논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는 6년 전 샤오메이 천의 『옥시덴탈리즘』이 나온 바 있지만 최근 이언 바루마와 아비샤이 마갤릿이 동명의 책을 출간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언 바루마의 책은 옥시덴탈리즘의 한 단면인 반서양주의를 논하고, 샤오메이 천의 책은 현대 중국에서 벌어졌던 옥시덴탈리즘의 극단적 양면(반 서양주의와 친 서양주의)을 함께 논한다는 것이다.

바루마와 마갤릿의 『옥시덴탈리즘』은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이나 초국적 기업인 스타벅스에 대한 반감 등 반 서양주의의 기원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반 서양주의의 기원은 자본과 결탁한 제국주의, 그리고 물질문명이다. 제국주의 국가에 침략당한 식민지 국가는 제국주의가 추구하는 물질문명에 의해 타락하게 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저항의식이 반서양주의, 옥시덴탈리즘이라는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을 물질문명의 대표주자로 규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성전에 참여해야 한다고 젊은이들을 독려하는 모습은 옥시덴탈리즘의 한 사례다.

반 서양주의가 식민지가 아닌 후발 제국주의 국가였던 독일, 일본, 러시아 등에서 출현했다고 보는 견해는 이 책의 독특한 점이다. 실상 영국, 프랑스 등의 선진 제국주의 국가와 다를 것 없는 이러한 국가에서 반 서양주의가 유래했다고 보는 주장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합리주의를 차가운 이성의 사상으로 규정하고 독일의 낭만주의는 따뜻하고 인간적이라고 주장했던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나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이 서양문명을 ‘일본정신을 좀먹는 병원균’으로 규정한 것이 그 예다. 이런 반서양주의, 구체적으로 말해 반 선진제국주의는 자국 내의 구성원들을 민족의 이름으로 단결시키고 적대국에 대한 자국의 침략을 합리화하는 공격적인 개념이 될 수 있다.

샤오메이 천의 『옥시덴탈리즘』은 현대 중국에서 옥시덴탈리즘이 어떻게 정치와 연결돼 왔는지를 설명한다. 지배세력과 그 지배세력에 대항하는 엘리트 집단은 각자 그들의 목적에 맞게 옥시덴탈리즘을 이용한다.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한 지배세력은 서양문명을 반 중국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정치세력들을 반중국적이고 반혁명적인 인사로 규정해 숙청한다. 반서양주의가 중국 공산당의 혁명을 지탱하고 지배세력의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반면 친서양세력인 엘리트 집단은 서양문명의 상징인 셰익스피어의 연극 등을 통해 지배세력의 억압적 통치와 권력욕을 비판한다. 1980년 베이징 중앙 연극학교에서 공연된 「멕베스」의 사례가 이를 설명해 준다. 이들은 지배세력과 서양문명 사이에서 중립적인 척하며 타자화된 극중 인물들로 하여금 지배세력을 비판하게 한다. 주인공인 멕베스가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주위의 사람들을 죽이고 공포정치를 행하다가 결국은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는 이야기를 이용해 마오쩌둥도 저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회적인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한 것이다. 관객에게 지배세력을 비판하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배우가 서양 옷을 입고 타자화됐는 점에서 옥시덴탈리즘의 정치적 이용을 잘 보여준다.

두 책의 저자들은 옥시덴탈리즘 자체보다는 옥시덴탈리즘이 정치적, 민족적 개념과 연결됐을 때 배타적인 공격성을 띨 수 있음을 경고한다. 옥시덴탈리즘 또한 오리엔탈리즘처럼 타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적대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폐쇄적 사회에 대한 방어를 명목으로 우리 사회를 폐쇄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던 이언 바루마의 마지막 제언은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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