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호소력 상실한 국가는 국제적 성공 어려워 세계시민으로서의 국제적 책임감 가져야

구인회
사회대 교수·사회복지학과

최근 진행된 세계사는 외부 세계에 도덕적 호소력을 상실한 국가가 국제무대에서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라크 전쟁의 결과 더 깊은 고립상태에 빠져든 미국의 예는 초강대국일지라도 명분 없이 개입한다면 승리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지미 카터 전대통령에 따르면, 미국의 일방적인 중동정책이 실패한 근저에는 사회여론에서 아랍세계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해온 미국의 지방화된 정치현실이 놓여 있다. 친유대적 기독교집단과 유대인 로비집단의 강력한 영향력에 포위되어 이스라엘에 반하는 발언은 곧 정치적인 자살행위로 통하는 협소한 미국 정치가 아랍세계에서 호소력을 가질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물 안 개구리식의 지방적 의식이 변화하는 세계 현실과 마찰을 빚는 예는 비단 미국에 제한되지 않는다. 우리 이웃 아시아를 둘러보자. 일본은 패전 후 단기간에 미국 다음의 경제력을 과시하는 지위를 회복하였다. 하지만 전쟁범죄라는 과거를 은폐하려는 일본 지도층의 끊임없는 시도는 그 직접적 피해자였던 한국· 중국과의 첨예한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은 아시아에서의 지도적 지위를 꿈꾸고 있지만, 세계여론의 비판 속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들이 저지른 종군위안부들에 대한 범죄행위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기대를 갖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래 20여 년간 고속 경제성장을 지속한 중국은 이제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지위에 도전하는 강대국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인권탄압을 자행하는 아프리카 정권들의 후견자로서 세력을 넓히며 자원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는 중국의 천박한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음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수년에 걸쳐 20만 명 이상의 죽음을 몰고 온 수단 다푸어 인종학살에 대해서조차 국제사회의 개입을 방해하며 탐욕적 자원외교를 앞세우는 중국에 세계화시대 리더십의 진정한 면모를 찾을 수는 없다.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한 때 해외원조를 받던 우리는 세계 10위권에 육박하는 경제규모를 자랑하게 되었지만, 지금 우리가 내는 해외원조액은 OECD 국가 평균치의 사분의 일 수준으로 최하위권이라 한다. 작년 말 정부는 늦게나마 해외원조를 늘리는 장기계획을 발표했지만, 46%에 달하는 우리 국민 다수는 원조를 늘릴 필요가 없다는 반대의견을 보였다고 한다. 우리의 시민의식도 세계화와 거리가 멀기는 매한가지다.

우리가 2만 불 시대를 외치며 선진국 진입을 꿈꾸는 이 시점에도 세계인구의 다수는 2달러가 안 되는 돈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매일 3만 명에 달하는 어린이들이 빈곤으로 죽음에 이르고 있다. 이 죽음의 행렬 셋 중 하나에는 만성적인 영양부족 상태에 빠져있는 북한 어린이들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컬럼니스트 니콜라스 그리스토프는 이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이유를 영양실조나 말라리아가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라고 질타한다. 세계화가 유행어가 된 이 시대에 정작 세계시민으로서의 국제적 책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게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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