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성은 잠재적 성범죄의 피해자 일시적 분노 아닌 강력한 단속, 처벌 등의 관리 절실

▲최민정 학술부장
버스 운행 시간까진 한참 남았고 지나가는 택시는 찾기 어렵다. ‘걸어서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보니 어느새 공깡까지 왔다. 중도를 지나 으슥한 인문대 골목길에 들어서니 조금씩 어깨가 움츠러들고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며 뒷목이 뻐근해지는 신체변화가 일어난다. 어제 스누라이프에 올라온 신림동 성범죄에 관한 이야기 때문일까. 입에 담기도, 머리에 떠올리기조차 싫은 파렴치한 성범죄가 연일 포털뉴스의 헤드라인으로 오르는 세상이다. 음침한 산으로 변한 캠퍼스에서 불안감은 점점 증폭된다. 이럴 때 가장 원망스러운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무엇 하러 이 새벽에 길을 나섰단 말인가. 대한민국 여성에겐 밤이 되면 안심하고 귀가할 자유, 캠퍼스를 걸을 자유 따윈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탓이다.

“탁, 탁, 탁.” 뒤에서 낯선 이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온몸의 근육이 경직된 것만 같다. 누굴까? ‘그녀’라면 나와 무언의 동지가 되어 줄 것이고 ‘그’라면 다급한 내 발걸음을 더 빠르게 만들겠지. 하긴 늦은 밤에 거리를 걷는 이유만으로 마치 성범죄 용의자가 된 것처럼 경계 대상이 되는 ‘그’ 역시 피해자다. 왜 우리는 밤이 되면 서로를 경계하고 위협해야 하는 것일까. 아아, 어둠이여.  

이런저런 생각에 이르다 어떤 얼굴이 떠오른다. 동네 신발가게 주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당하고 불태워진 11살 여자아이. 가해자는 재범이었다. 성폭력범죄자 처벌의 미약함과 국가의 무책임한 성범죄자 관리 실태를 그대로 보여줬다. 그리고 그 끔찍한 사건이 이 땅에 일어난 것이 처음인 것처럼 그제야 사람들은 성범죄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언론과 국회는 전자 팔찌라든가 약물 투여, 얼굴공개 등의 성범죄 처벌 방법에 대한 다양한 대안을 앞다투어 내놨다.

그 후 일 년여가 지난 지금 ‘아동성폭력추방의 날’이 제정되고 새로운 성폭력범죄처벌법이 입안됐지만 여전히 성범죄율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시간당 1건의 성범죄(실제범죄에 비해 신고하는 경우가 훨씬 적다고 하니 실제로는 더 많은 수의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고 특히 많은 학우들이 거주하는 관악구 신림동은 평균 범죄율이 타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그러나 관악경찰서는 『대학신문』의 성매매업소 수사협조 요청을 ‘성범죄 단속기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성범죄 발생은 정해진 기간이 없는데 성범죄 단속에는 정해진 기간이 있다.

성범죄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단속과 처벌, 재범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관리,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 후에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오긴 할까. 성폭력 범죄는 가끔 뉴스에서 터지는, 그래서 잠시 분노하고 말 문제가 아니다. 잠재적 성범죄의 피해자인 나는 오늘도 문밖을 나서야 한다.

새벽 4시.

2시간과 같았던 20분이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자 오그라들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 밤하늘에 별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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