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에 민감한 학교부터 무더기 구조조정 시작

“제 자식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라도 세상에 부당함을 알리고 끝까지 투쟁할 겁니다.” 서울 성북구 소재 성신여고 행정실에서 12년째 행정보조로 일해 온 정수운씨(34세)는 지난 1월 25일 학교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정씨는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돼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학교의 일방적 통고만 들었을 뿐”이라며 자신의 기막힌 심정을 토로했다. 정씨는 성신여고 앞에서 지금도 1인 시위 중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리’가 시작되고 있다. 학교비정규직노조 류정렬 조직국장이 “전국 6600개 학교에서 지금까지 비정규직 1명 이상씩은 해고됐다”고 말할 정도다. 이는 올 7월 시행을 앞둔 ‘공공부문비정규직종합대책(종합대책)’ 때문이다. 애초 종합대책은 상시 고용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차별해소 등을 의도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자 재정에 민감한 학교 현장에서부터 무더기 구조조정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을 보호하려는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불러 일으킨 셈이다. 노동부 공공부문비정규대책팀 최영범 사무관은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자제하도록 공문을 보내고 있지만 강제가 아니어서 딱히 막을 방법은 없다”면서도 “미리 예산을 확보하지 않고, 법 시행시기가 다가오자 법안을 들먹이며 노동자를 해고하는 학교 측의 잘못이 더 크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경향이 사기업에서도 속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국회에서 통과된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비정규직을 2년 이상 고용했을 때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노동전문가들은 이 조항이 외주화와 차별을 고착시키는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한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박성우 법규국장은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년 11개월 근무하고 나서 해고된 후 재고용되는 상황을 절대 막지 못한다”고 지적했고,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이미경 미조직비정규팀장도 “단기계약직을 반복적으로 계약 갱신해 2년까지 사용하다가 해고하는 등 사용자의 권리만 높아지고 노동자의 권리는 저하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 7월부터 법이 시행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이 쉬워져 노동시장이 안정화될 것”이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공공부문에서부터 노동계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 측은 “공공기관의 해고 사태는 비정규직 대책 때문이라기보다는 애초부터 외주화 계획을 하고 있던 운용 방침이나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노동계에서는 지금이라도 이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주환 편집국장은 “비정규직에 특별법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이런 대책은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기준으로 활용돼 오히려 비정규직 양산만 부추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유현경 정책국장은 “비정규직 사용 기간제한이 축소돼야 할 뿐 아니라 특별한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허용한다는 ‘사유제한’이 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러한 사태에 대해 “해고를 걱정할 바에야 임금이 적더라도 비정규직으로 계속 일하는 것이 낫다”고 되레 노동계에 불만을 호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생기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석권호 비정규국장은 “비정규직을 그대로 놔두면 앞으로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며 나쁜 고용조건에서 계속 일할 수밖에 없다”며 “노동계가 힘을 합쳐 비정규직 철폐에 나서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것은 자본이 가져가는 이윤의 몫을 노동 쪽에 나눠주라는 것”이라며 “비정규직 해고를 노동운동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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