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믿고 묵묵히 일해 온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는 건가?”

지난 1일(화)은 117주년 노동절이었다. 노동절은 파업 600일을 넘긴 사업장에도 찾아왔고, 한 달 전 청천벽력같은 해고통지를 받고 근심에 젖어있는 노동자들에게도 찾아왔다. 『대학신문』은 세 군데의 파업 현장에 주목해 파업의 원인과 경과에 대해 알아봤다.

기륭전자는 GPS네비게이션, DMB수신기 등을 생산하는 중견회사다.

기륭전자 노동조합은 회사가 불법파견을 해왔기 때문에 파업 중이라고 밝혔다. 노동자가 실질적으로는 회사에 고용된 상태이면서 형식적으로는 파견업체에 속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불법파견이라고 한다. 이 경우 회사는 불법파견 노동자에 대해 임금, 해고 등에 관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파업투쟁에 참여중인 박행란씨는 “파견근로자는 근무시간 중 잡담을 하거나 병결을 하면 바로 해고될 수 있는 ‘파리목숨’이었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2005년 8월, 기륭전자의 파견업체인 (주)휴먼닷컴이 100여 명의 직원을 문자메시지로 해고하자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해 파업을 시작했고, 이후 노조원들은 회사 정문 등에 투쟁본부를 설치하고 지금까지 파업을 벌이고 있다. 

회사 측은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 우리 회사의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합법적인 파업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 측은 “회사에서 근무 중인 정규직도 파업에 참여하고 있어 불법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파견업무가 불법판결을 받자 ‘완전도급화’를 실시했으며, 노조에 54억원의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등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진 상태다. 노조 측은 “완전도급화는 파견근무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지금도 불법파견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역삼동 르네상스호텔농성은 2001년 호텔 측이 재정난을 이유로 객실청소업무를 RST라는 외부 용역 업체에 이양하면서 빚어졌다. 대부분이 여성인 객실청소원들은 호텔의 권유에 따라 명예퇴직을 했고, 호텔 측은 그들이 해당 용역업체에 입사할 수 있게끔 ‘배려’했다. 그러나 똑같은 일을 하면서 평균 연봉이 3천만원에서 1300만원으로 떨어졌고, 이에 노동자들이 다시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것을 사측에 요구하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이들의 시위는 2005년 12월 31일부터 시작됐다.

시위노동자 이옥순씨(52세ㆍ여)는 “사측이 노조위원장과 결탁해 퇴직을 강요했다”며 “RST는 2001년 구조조정 당시 호텔을 퇴직한 직원이 만든 유령 하도급 업체”라고 주장했다. 실질적으로는 호텔 측에서 계속 노동자를 관리했다는 말이다. 이어 “2005년 호텔 측이 용역업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고용승계를 막았다”고 말했다. 용역업체 변경과정에서 ‘불순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는 일은 울산과학대, 광주시청, 롯데호텔 등의 사례에서도 드러난 문제다. 

반면 호텔 측은 시위 노동자들의 주장을 전면 반박하고 있다. 양문선 인사총무부장은 “호텔 측은 이미 검찰 조사 결과 무혐의로 밝혀졌다”며 “자의로 퇴직했고 퇴직금도 받았으면서 왜 이런 시위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상황은 시위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2004년 시위 노동자들이 제기한 민사 소송은 여전히 법원에 계류 중이고 검찰의 재조사 가능성은 희박하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50명이 넘었던 시위 참여자들은 10명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남은 시위자들도 심각한 생계문제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옥순씨는 “법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라며 “상황이 어렵지만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노조로 유명한 삼성에서도 투쟁이 이뤄지고 있다. 울산 삼성SDI의 사내기업 하이비트가 지난 3월 말 100여명을 집단 해고한 사건이 투쟁의 발단이 됐다.

 

PDP, LCD 등을 생산하는 삼성SDI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8천명의 정규직 노동자 중 5천명을 사내기업에 취직시킨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비정규직화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SDI측은 사내기업에  입사한 노동자들에게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와 정년을 약속했다. 하지만 사내기업 노동자들은 점차 정규직과 임금 및 노동조건에서 격차가 나기 시작했고, 올해 1월 사내기업인 영성전자 등에 계약만료를 통보하면서 이 약속은 완전히 깨졌다. 이렇게 올 들어 삼성SDI의 구조조정에 의해 일자리에서 쫓겨난 노동자만 수백여 명에 이른다. 하이비트 LCD생산라인에서 일하던 황선목씨(45세ㆍ남)는 “우리는 휴일 없이 연장근무까지 하며 한 달 꼬박 일해도 고작 13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아왔을 뿐”이라며 “이렇게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서 묵묵히 일해 온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삼성SDI 측은 “고용보장을 약속한 것은 공장 자체가 폐쇄될 때를 전제한 것은 아니었다”며 “새 공장을 지어 이들을 최대한 재고용할 것이며 지금도 사외 하청업체 알선 등을 통해 재취업을 돕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 해고자복지투쟁위원회 송수근 부위원장은 “약 4300명이 이런 식으로 해고됐지만, 그동안 회사는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기다려달라는 말만 반복할 뿐 재취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연구위원은 “이럴 경우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기업의 무더기 구조조정을 막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석주, 김동현, 이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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