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쉬르 탄생 150주년 기념 기고]

▲ 필자: 김현권 교수
방송통신대 불어불문학과
     
 
   
 

소쉬르(F. de Saussure)는 언어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나아가서 20세기 유럽사상사의 한 축을 형성한 인물이다. 마르크스가 사회경제사의 큰 흐름의 방향을 제시하고, 프로이트가 인간심리의 숨겨진 무의식 세계를 발견했다면, 소쉬르는 인간정신과 문화의 매개이자 담지자인 언어의 과학적 탐구를 통해 새로운 시기의 과학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소쉬르가 20세기에 정신과학과 사회과학의 발달에 미친 영향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구조주의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이다. 구조주의의 출현은 현대과학사의 신기원을 이루며, 소쉬르에게서 그 기원을 갖는다. 유럽 구조주의학파들은 그의 『일반언어학강의 Cours de Linguistique G럑럕ale』(Ch. 발리와 A. 세쉬예 편집본)에 제시된 혁신적인 언어이론과 인식론, 철학적 성찰을 수용하여, 각기 독자적으로 연구관점과 연구대상 그리고 방법론을 쇄신시켜 학적 체계를 재구성하며 발전을 도모했다. 구조적 인식, 즉 구조(structure)의 틀 내에서 사고함으로써 과학의 제 영역에서, 숨겨진 보이지 않는 원리와 법칙을 발견하는 인식과 과학적 절차를 제시한 공적은 바로 그에게 있다. 인문학의 제반 영역, 즉 언어학(N. 트루베츠코이, L. 옐름슬레우)을 비롯하여, 인류학(C. 레비-스트로스, M. 모스), 문학(R. 바르트), 철학(M. 푸코, M. 퐁티), 정신분석학(J. 라캉), 해석학(P. 리쾨르), 기호학(L. 프리에토)과 같은 학문들이 경이적으로 발전한 것도 구조적 패러다임 덕택이었다.

학계와 대중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일반언어학강의』에서는 패러다임의 교체를 볼 수 있다. 기존 언어학의 원자론, 특히 당시 소장문법학파의 원자론이 구조언어학의 체계적인 보편주의에 의해 극복되었다는 점에서 이 패러다임의 교체를 얘기할 수 있다. 이 저서의 핵심적인 개념들과 원리 및 방법은 학계의 연구방향 전환에 획을 긋는 틀을 제공하고 있다. 랑그(langue)와 빠롤(parole), 기호(signe)와 기호학(s럐iologie), 시니피앙(signifiant)과 시니피에(signifi?, 관계(relation)와 체계(syst럐e), 공시태(synchronie)와 통시태(diachronie) 등의 개념은 모든 구조주의적 연구분야에서 통용되는 핵심 단어들이다. 그러나 그의 구조적 사상과 학적 이론의 토대는 그가 인도유럽어 역사비교언어학을 연구하던 젊은 시절(21세)에 발표한 저서 『인도유럽어 원시모음체계 논고』에 이미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소쉬르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반언어학강의』는 그의 진정한 의도와 사상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그가 자신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확고하게 구축한 시점에서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사후에 제자들의 강의노트에 기초해서 편집된 것이어서 이 저서에 양립불가능한 해석과 상반되는 원리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후기 소쉬르주의의  비판적 주장도 거기에 한몫을 했다. 그리하여 소쉬르 연구자들은 그가 직접 쓴 필사본과 노트들에 근거해서 그의 사상과 이론, 방법적 개념들과 원리를 비판적으로 재검토·재구성했다. R. 고델, T. 데 마우로, R. 엥글러 같은 학자들은 ‘진정한 소쉬르’의 이해에 큰 기여를 했다. 『일반언어학강의』는 소쉬르 언어사상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독해를 방해하기도 했지만, 그 근본 사상은 20세기의 소쉬르 신화를 만들어냈다.   

기고: 김현권 교수(한국 방송통신대 불어불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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