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내셔널리즘과 아시아의 화해 -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논설주간)

“50점 맞던 자식이 60점을 맞아서 돌아오면 계속 혼내지 말고 ‘그래도 열심히 했구나’라고 이야기해 주십시오.”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아사히신문(朝日新聞)」 논설주간은 지난 10일(목) 국제대학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일본이 지난 과거를 용서받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일본의 사죄가 완벽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이러한 모습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와카미야 주간은 “한국은 북한에는 관대한 시각을 보이면서도 일본에는 그렇지 않다”며 “일본에도 ‘햇볕정책’을 펴 달라”고 말해 웃음을 유발했다.

▲ 사진: 서유경 기자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아시아의 화해’라는 제목의 이번 강연회는 100여 개의 좌석이 가득 차는 등 높은 호응 속에 시작됐다. 와카미야 주간은 민감한 주제를 감정적으로 다루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가 주필로 있는 「아사히신문」은 얼마 전 일본 평화헌법 제정 60주년을 맞아 ‘전 지구에 공헌하는 국가가 되자’는 의미의 대형사설을 게재하는 등 일본 내 진보계열 언론으로 알려져 있다.

와카미야 주간은 이날 강연회에서 일본이 제국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게 된 원인으로 ‘냉전’을 꼽았다. 일본은 중국의 공산화, 한국의 분단, 미국의 정치적 압력 등으로 인해 전범 숙청보다는 ‘반공(反共)’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즉 독일을 둘러싼 유럽은 ‘반(反)나치스’의 구호 아래 전범 숙청에 힘을 모을 수 있었지만 일본은 냉전 세력들의 압력으로 전쟁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일본이 침략했던 국가들에 대한 사과도 이뤄질 수 없었다.

그는 독일과는 다른 20세기 초 일본의 정치 구조도 일본의 자기 개혁을 막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세력이 히틀러와 나치스로 일원화된 정치 구조였지만, 일본의 정치 구조는 전쟁을 지지한 군부 세력과 전쟁에 부정적이었던 천황으로 이원화됐기 때문에 당시 집권 정치세력을 절대적으로 단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쇼와(昭和) 천황은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계속 집권하며 일본 재건의 상징이 됐다.

또 와카미야 주간은 일본 내 극우파들의 움직임을 역사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대외관계에서 ‘익년(翌年)의 법칙’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익년의 법칙이란 일본 정부가 한국에 화해의 움직임을 보인 다음해에는 극우파들의 민족주의적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에 대한 시이나(椎名) 외상의 사죄 성명이 있었던 1965년 다음해에는 민족주의의 표출인 건국기념일 제정이 있었고, 일본 천황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과거에 대해 사과했던 1984년 다음해에는 나카소네(中曾根) 수상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공식 참배가 있었다.

와카미야 주간은 일본 내 우경화 움직임이 일본 전체의 모습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은 한국에 수없이 많은 사과를 했지만 이런 우경화 때문에 일본이 사과를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아베(安倍)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보낸 것을 두고 “‘(극우파들의 정치적 입김에 안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직접 참배는 하지 않겠다’는 아베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지난 4월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평화헌법이 일본 평화에 기여했는가’라는 질문에 “78%의 일본 국민이 ‘일본 평화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던 점을 자료로 제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일본 국민 대다수는 일부 극우파들이 추구하는 우경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토론에 참여한 장인성 교수(외교학과)는 “익년의 법칙을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일본의 사죄가 과연 진심이었는가?’라고 의심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진정한 사과가 아니었기에 다음해에 곧바로 또 다른 움직임이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장 교수는 ‘긴장과 복종의 법칙’을 거론하며 “역사를 살펴보면 일본 여론이 정부의 우경화 방침에 초기에는 반대하다가도 시간이 흘러 그 긴장 상태가 해소되면 정부의 방침에 복종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 와카미야 주간은 일본과 독일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독일의 ‘홀로코스트’는 부정적으로 비판했지만 일본의 ‘종군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을 회피했다. 이에 한 참가자는 “그의 진보적인 발언을 기대했는데 ‘일본을 좀 더 이해해 달라’는 식의 발언이 조금 실망스러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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