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게 아닌데…….” 주인공은 버튼을 눌러 시간을 거슬러 다시 사건의 중요한 지점으로 되돌아간다. 원하지 않았던 결과를 해결하니 웬걸 다른 일이 불쑥 일어나 또다른 사건을 만들어낸다. 할 수 없다. 다시 버튼을 누를 수밖에. 이런 설정의 영화는 흔하다. 언제나 결론은 시간을 되돌려 그 일을 해결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결말지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결된 일은 예상치 못한 또다른 사건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모든 것은 연쇄적이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데. 나비효과처럼 순간의 작은 선택은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에겐 시간 여행의 능력이 현재로서는(?) 없다. 대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예견과 상상의 능력이 있다. 우리는 종종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현재 어떻게 달라졌을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며 현재 선택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순간순간 어떤 선택이든 후회하지 않을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

요즘 들어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며 ‘커밍 아웃’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정체성이 아닌 학력과 나이의 정체를 학계와 연예계에서 밝히고 있다. 그들이 도덕적인 가책 없이 했던 날갯짓이 지금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연예계에선 고무줄 나이가 유명한 지 오래라 그리 놀랍지 않다. 문제는 학계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임됐다가 거짓학력으로 교수직에서 파면된 신정아씨 사건과, 학력을 위조한 것으로 밝혀져 굿모닝 팝스 진행자에서 사임한 이지영 씨 사건 등을 계기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스스로 고백하는 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신정아 씨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한편의 전시를 멋지게 기획해냈다.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드는 예술의 속성을 충분히 활용해 관객을 얼마나 감쪽같이 속였는가?

학력 위조 사건들에 대해서 여기저기서 학력 검증체계의 부실을 소리 높여 지적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을 보며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인정하고 선망했던 간판이 가짜였지만 그들은 그 간판이 사실인 것처럼 믿게 할 만큼 실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망 받는 화려한 생활을 즐겼다. 오히려 그들을 보고 느꼈다. 간판은 필요 없고, 실력만이 중요할 뿐이라고. 그러나 그들이 자신과 사회를 속이려는 선택을 과거에 하지 않았다면 간판과 학벌을 중시하는 이 사회에서 실력만으로 지금쯤 같은 위치에 있을 수 있을까? 그들을 보기 위해 시간 여행 버튼을 눌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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