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지철과 조선일보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라고들 한다.

 

5ㆍ16 쿠데타와 관련한 유명한 야사가 한토막 있다. 61년 그날 새벽 군사반란에 가담하기로 한 부대 중에는 김포 부근에 주둔한 공수단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부대의 지휘관이 정작 결정적 순간에 출동을 망설였다. 주모자인 박정희 소장은 지프차를 타고 부대를 직접 찾아왔다. “다른 동지들은 벌써 출동했다. 공수단만 꾸물거리고 있다. 지체없이 출동하라.” 이 말이 공수단의 총부리를 민선정부로 돌리게 했다.

 

 

그런데 박 소장이 공수단에 도착하기까지 출동이 확인된 부대는 단 하나도 없었다. 반란군의 일역을 담당하기로 한 수색 지역의 30사단에서는 불법적인 병력동원 계획이 탄로났고, 영등포의 6관구 사령부에서는 주모자들과 그들을 체포하러 온 헌병대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공수부대만 빼고 다 출동했다”는 박 소장의 말은 거짓말이었으며, 이 말을 믿고 나간 공수단이야말로 반란에 가담한 첫 주력부대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또 하나의 후일담이 있다. 훗날 유신정권 말기에 권력의 2인자인 청와대경호실장까지 오른 공수단의 차지철 대위는 반란에 가담키로 한 자신의 직속상관이 출동명령을 내리기 망설이자 직접 잠겨진 탄약고의 문을 부쉈는데, 박 소장은 그의 이런 과감한 ‘액션’에 ‘감동을 먹고’ 그를 죽을 때까지 중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반복되는 역사는 규모가 좀 크다.

 

 

미국은 탈냉전 이후 다자간 합의와 타협에 입각한 외교의 상식과 국제질서에 대해 ‘일방주의’라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라크에서의 전황이 나빠지자 ‘맹방’에게 추가파병을 촉구해 왔다. 그 파병 촉구의 어조는 42년 전 박 소장의 말과 비슷했다. 태국도 파키스탄도 터키도 전투병을 대규모로 추가파병하려 한다, 한국만 꾸물거리고 있다고. 추가파병은 불가피한 국제적 대세인 양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불과 몇 달 사이에 그 규모와 구성만이 문제될 뿐 파병 자체는 기정사실처럼 공표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막상 대외적으로 추가파병에 대한 긍정적 의사를 천명하고 보니, 다른 맹방들은 하나 둘씩 파병불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터키도 파키스탄도 태국도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남들은 다 출동했다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나가 쿠데타의 선봉이 된 공수단과 흡사하지 않은가.

 

 

그런데 닮은 꼴은 또 하나 더 있다. 쿠데타에 가담하지 못해 안달이 났던 차지철 대위처럼 ‘파병’ 이야기가 나오자 정체모를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북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차지철 대위가 공수단 탄약고를 때려부술 때에는 ‘쿵, 쾅’ 소리가 났지만, 이들이 요즘 ‘여론’의 양철북을 칠 때에는 ‘한미동맹, 안보협력’이란 굉음이 난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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