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선경 조합원 다수 용역화 반대하다 부상 당하기도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기록 담은 「얼굴들」 상영
지하 기계실 외로운 투쟁, 영화제 통해 연대의 힘 얻어

▲ 지난달 27일 구로 선경오피스텔 기계실에서 열린 인권영화제의 참가자가 주최 측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 나혜진 기자
‘여성 비정규직과의 연대’ 인권영화제 ‘반딧불’ 상영작 「얼굴들」

그들은 노동자였다. 한 가정의 주인이자 한 남편의 아내이며 아이들의 어머니였다. 그들은 직장과 가정이라는 이중부담을 안고 힘겨운 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지난달 27일 구로선경오피스텔(구로선경)에서 열린 인권영화제 ‘반딧불’의 상영작 「얼굴들」의 내용이다. 「얼굴들」의 지혜 감독은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냈다.

지난 1998년 부도위기를 맞은 반도체회사 시그네틱스는 파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운영이 중단된 안산 공장으로 계속 출근하라는 통보를 내린다. 이에 노동자들은 파주 공장 고용을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한다. 투쟁은 이후 5년 동안 계속됐다. 

여성 노동자들은 대개 임금노동보다는 ‘보살핌’이라는 살림노동의 일차적인 책임자로 간주된다. 하지만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은 남편의 등 뒤에 숨지 않고 가족의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 노조를 조직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노동권을 위한 나의 투쟁이 다른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싸움으로 비춰지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회의감을 토로한다. 동시에 가정과 직장이라는 이중부담에 지쳐간다. 하지만 그들은 ‘이 싸움은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한 싸움’이라며 끝까지 투쟁해 나간다. 지혜 감독은 “사회는 여성 노동자에게 노동자의 역할보다 아내·엄마라는 가부장제 아래의 가정 역할을 먼저 요구한다”며 “여성 노동자를 아내나 엄마라는 틀 안에서 보지 말고 노동자 그 자체로 봐야 한다”고 「얼굴들」의 의미를 설명했다.

한편 이번 상영회가 열린 구로선경 지하 5층 기계실에서는 외주 용역화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이 지난 7월 3일부터 농성하고 있다. 전기·기계관리, 청소, 경비직 등을 맡아 일하던 정규직 직원들은 지난해 구로선경 자치관리단이 운영하던 건물 관리를 용역으로 전환한 데에 반대, 24명이 노조를 결성해 용역전환 철회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갔다. 지난 7월 8일 새벽 2시쯤 용역업체 직원 70여명이 산소용접기, 해머 등으로 문을 부수고 기계실에 진입해 농성 중이던 노조원들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노조 분회장 윤재일씨가 실신하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조합원 다수가 큰 부상을 당했다. 경찰이 출동해 용역 직원 21명을 연행해 갔고 현재 조합원 9명이 파업을 계속하고 있다.   

‘현장과의 연대’, ‘영화를 통한 인권의 가치 확인’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2002년부터 매달 1~2회 인권과 관련된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반딧불’의 김일숙 활동가는 “현재 구로선경의 농성장은 (지하 5층 기계실이라서)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노조원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투쟁 모습을 보면서 노조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상영회 장소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이날 상영회는 기계실 안쪽의 10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감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영화 상영을 마친 후에는 모여 앉아 토론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 자리에서 구로선경의 여성 노조원 박금자씨는 “같은 여성 노동자로서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힘이 난다”고 말했다. 윤 분회장은 “학생들이 앞으로 이런 투쟁현장에 많이 찾아와줬으면 한다”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여러분들에게도 곧 닥칠 수 있는 일”이라며 대학생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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