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의 허구

우연히 들춰 본 95년도 『대학신문』에서 깜짝 놀랄만한 기사를 발견했다. 총학생회(총학) 선거로 학교 전체가 떠들썩했던 그 해 가을, 어김없이 아크로에서는 선거에 출마한 선본들의 공동유세가 벌어졌던 모양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려던 순간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은 문구가 있었으니, “유세를 보러 온 학생이 7백여 명에 불과해 선거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어김없이 찾아온 2003년 선거철, 출마한 선본수나 유권자 수는 8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건만 청중은 크게 변한 듯하다. 물론 8년 전에 비해서는 ‘인터넷’이라는 녀석이 훨씬 발달해 찬바람에 언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현장에서 직접 유세를 관람하는 대신 자기 집 컴퓨터 앞에 따뜻한 커피 한 잔 들고 앉아 화려하게 꾸며진 선본 홈페이지를 찾아가기만 해도 후보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 지 알 수 있다지만, 유세장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의 반응은 한 번쯤 살짝 귀 기울이는 척할 법도 하건만 늦가을의 찬바람보다도 더 냉담했다.

 

인터넷을 유세에만 이용하고 선거에는 도입하지 않은 때문인지 올해 선거에서는 33.4%라는 기록적인 투표율을 보였다. 선거기간 3일 중에서 둘째날은 비가 오고 세째날은 학교에 사람이 별로 없는 금요일이었던지라 인터넷 선거의 필요성은 더더욱 절실하게만 느껴진다. 올해 처음으로 총학선거에 인터넷 투표를 도입한 숙명여대가 연장투표 없이 선거를 무사히 마쳤다는 소식이 부럽기만 하다.

 

나름대로 수년간 지속돼 온 연장투표 문제를 해결할 만한 비책을 생각해냈다고 우쭐할 때쯤 한 후배녀석이 말했다. “누가 나와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투표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학과나 학번 모임 커뮤니티 등 온라인에서 누구보다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후배의 말이었기에, 인터넷 선거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올해도 투표율 미달로 인한 연장투표가 월요일부터 이틀간 진행될 예정이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투표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옆구리를 억지로 찔러가며 연장투표를 하는 것은 유권자들에게나 선관위, 선본에게도 그다지 달갑지 않은 모습이다. 유권자들의 투표권이 보장된다면 투표하지 않을 권리 역시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유권자들이 선거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이다. 그들의 무관심을 설렘으로 바꾸는 것은 선거철에만 반짝 “관심 가져주세요”라고 외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연장투표를 통해 투표율이 50%를 넘었다고 해서 이것이 ‘학생회의 대표성’을 절대적으로 담보해주지는 못한다. 학생회의 대표성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는 문제다.

 

인위적 50% 투표율이 학생회 ‘대표성’ 담보할 수 있나 학생회여, 미몽에서 깨어나라. 더이상 학생들은 총학선거 후보들의 유세를 듣기 위해 아크로에 모이지 않는다. 투표율 50%라는 수치만으로 “학생들이 학생회에 무관심하지 않다”고 자위하지 말라. 학생들의 무관심은 선거를 통해 단숨에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선출된 학생회가 1년 동안 활동하면서 극복해야 할 과제다. 투표율 50%에 목매달지 말고 이제 그만 투표함을 여는 것은 어떨까.

 

올 시즌 56개의 홈런을 때려내면서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프로야구 선수 이승엽이 올해 기록한 타율은 3할이었다. 학생들의 관심과 기대에서 이미 멀어져버린 멀어져버린 지 오래인 학생회가 선거를 통해 3할3푼이나 되는‘타율’을 기록한 것은 꽤나 선전한 결과가 아닐까?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