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만들어진 신 - 김윤성 교수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지음┃이한음 옮김┃김영사┃2만 5000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만들어진 신』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리리라는 것은 익히 예견된 일이었다. 단지 그의 이름값 덕은 아니다. 그보다는 금세기 전환기에 옴진리교와 9ㆍ11처럼 종교가 얽힌 큰 사건들이 속속 터지면서 종교에 대한 비판적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이런 종류의 책이 여럿 나왔고, 『만들어진 신』도 그 중 하나다. 그 인기는 실로 대단해서 심지어 과학서와 인문서가 홀대받는 국내에서조차 가히 열풍이라 할 정도로 많이 읽히고 있다. 아마도 국내에서 그 인기는 사학법 논의, 종교인 과세 논쟁, 이랜드 분규,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처럼 종교, 특히 개신교가 연루된 일련의 사건이 낳은 효과인 듯하다.

그런데 좀 의아한 구석이 있다. 사실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 태반인 책인데 왜 이렇게 인기인 걸까?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책이 방대한 인용과 뛰어난 편집의 산물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이 책의 토대, 즉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라는 무신론 명제는 19세기 유럽 사상가들이나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이오니아 학파에게서도 익히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포이어바흐, 『종교의 본질에 관하여』).

▲ 로쏘 피오렌티노(Rosso Fiorentino)의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1520) 주인공인 예수와 성모, 요한은 중앙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늘에 가려있다.

철학이나 상식을 동원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던 시도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리는 3장의 논의도 다른 이들의 기존 작업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또 황당한 창조과학에 대한 대안으로 각광받는 어설픈 지적설계 이론에 대한 4장의 비판 역시 다른 이들이 제기했던 기존 비판과 그리 다르지 않다(호트, 『다윈 안의 신』, 키처, 『과학적 사기』).

더 있다. 여자와 아이 심지어 가축까지 학살하는 정복 전쟁과 여성, 성적소수자, 장애인, 타민족, 타종교에 대한 차별로 가득한 성서 내용에 대한 7장과 8장의 비판 역시 기독교 혐오주의자나 혁신적 기독교인 양 진영에서 줄곧 다루어 온 소재다(스퐁, 『성경과 폭력』).

물론 독창적인 부분도 많다. 도킨스 애독자에게는 좀 낡은 이야기겠지만, 어쨌든 자연선택과 밈(유전적 방법이 아닌, 특히 모방을 통해 전해지는 문화의 요소)이라는 진화론적 원리로 종교의 출현을 설명하는 시도는 제법 설득력이 있다(5장). 또 도킨스가 책 전반에서 내내 반복하는 말, 즉 선택권이 없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정신적 학대라는 경고는 미래 세대에 대한 그의 애정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무신론적 반종교주의자이기는 하지만, 도킨스가 종교를 마냥 비난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비록 수가 적기는 하지만, 어쨌든 깨어있는 종교인들에게는 존중을 표한다. 그가 비난하는 대상은 존중할만한 데가 별로 없는 나머지 대부분의 종교인들이다. 도킨스는 그들에게 대결의 도전장을 던진다. 당신들이 종교적이라고? 좋다! 누가 더 종교적인지 견주어보자. 종교가 없으면 도덕이 무너진다고? 좋다! 과연 그런지 따져 보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의 배후에 우리 마음이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오직 간접적으로만 또 희미하게만 우리에게 도달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종교다.”(1장) 그저 교회 같은 데 다닌다고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을 향한 겸손과 진정성을 지닌 삶이 더 종교적이라는 말이다. 물론 종교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도킨스 말고도 많다.
▲ 김윤성 교수

또 그는 종교를 빙자해 저질러진 악행들을 나열하면서 종교의 득과 실에 관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한다. 결과는 자명하다. 종교는 도덕을 고양하기보다는 훼손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도덕이란 인간의 상식과 양심에 뿌리박은 유산일 뿐 종교와는 무관하다고 결론짓는다(6장).

독자에 따라서는 도킨스의 도발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경전을 문자 그대로 믿고 자기 종교만이 진리라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특히 그럴 것이다. 물론 그들은 아예 이 책을 들추어 보지도 않거나, 혹시 읽더라도 애써 흠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로 읽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무신론자건 유신론자건, 종교가 있건 없건, 누구라도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더욱이 과학, 철학, 역사, 신학, 종교학을 넘나드는 박식함, 폭넓은 인용, 치밀한 논리, 맛깔스런 문장, 신랄하면서도 도를 넘지 않는 독설은 일단 책을 손에 쥐면 놓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도킨스 혼자의 산물이 아니다. 거기에는 진지하게 종교를 성찰했던 이들, 무신론자이건 종교인이건 인간과 종교의 진정성을 고민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한껏 녹아있다. 그렇기에 달랑 이 책 한 권을 읽고 그 예리한 비판에 박수치며 마냥 우쭐대거나 기가 죽어 마냥 움츠린다면 책을 잘못 읽어도 한참 잘못 읽은 것이다.

종교에 염증이 난 독자라면 도킨스가 사려 깊은 종교인들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종교적 신념을 지닌 독자라면 도킨스가 제기하는 도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오만과 두려움을 떨치고 도킨스에게 흔쾌히 도발당하는 독자만이 도킨스와 더불어 또는 도킨스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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