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이 풀어내는 남녀 심리의 비밀

▲ 삽화 : 박혜빈 기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이성친구가 문득 애인으로 느껴진 적이 있는가? 혹 애인이 생겼다는 이성친구의 말에 실망한 적이 있는가? 미국의 대표적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는 남녀관계에서 나타나는 인간심리의 복잡한 양상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풀어냈다. 그의 대표적 저서 『욕망의 진화』가 그의 제자 전중환 연구원(이화여대 에코과학연구소)에 의해 최근 새로 번역돼 화제다.

데이비드 버스는 37개 문화권 1만여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인간은 대부분 젊고 건강한 이성을 선호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남녀 모두 이성을 판단하는 주요한 기준으로 ‘건강한 특성’을 꼽은 것이다. 태초부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자신의 형질을 최대한 많이 퍼뜨리기 위해 높은 ‘번식 가치(reproductive value)’를 지닌 이성을 확보하려 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생식능력이 좋을 것으로 판단되는 젊고 건강한 이성을 선호하는 심리작용을 발달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는 과연 ‘그냥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 ‘남자와 여자’는 이성애자 남녀만을 지칭한다는 점에 유념하자. 『욕망의 진화』에서 버스는 이 주제에 대해 지난 2000년 에어프릴 블레스케(April L. Bleske)와 함께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먼저 이들은 ‘이성친구’를 자신과 낭만적 연애를 하지 않는 절친하고 중요한 이성 상대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성친구와 우정을 유지함으로써 어떤 이득을 얻는지, 이득을 받는 빈도는 어떤지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실험대상자 대부분은 ‘우정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인 이득’에 ‘이성친구에 대한 성적접근 가능성’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그 이득의 크기를 묻는 질문에 남성은 여성보다 2배 가량 높은 수치로 답했다. 상대방에 대한 이러한 인식차이로 인해 남자와 여자는 종종 그냥 친구 사이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여성은 남성을 ‘기댈 수 있는 친구’로만 생각하는데 남성은 여성을 ‘성관계의 대상’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버스는 남성이 여성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고자 하는 심리를 강하게 느끼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먼 옛날 여성은 임신하는 순간 다른 짝짓기 기회를 한동안 포기해야 하는 한편 자녀양육의 부담도 져야 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남성을 만나는 것이 여성에겐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하지만 일부 남성은 하룻밤 성관계만을 목적으로 거짓 구애를 하기도 했다. 따라서 여성은 이들을 구별해내기 위해 남자의 호의를 쉽게 믿지 않는 ‘헌신 회의 편향(commitment skepticism bias)’을 발달시키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반면 남성은 여성 상대방의 성적 신호를 아깝게 놓치지 않도록 ‘성적 과지각 편향(sexual over-perception bias)’을 발달시켰다. 실제 버스의 연구에서 ‘이성친구가 당신에게 얼마나 성적으로 끌리고 있는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남성은 여성보다 1.5배 높은 수치를 보였다. 결국 이성친구의 가벼운 신체적 접촉에도 ‘혹시 내게 관심이 있는 건가?’란 착각을 하는 것이다.

‘친구 사이’인 이성친구와 깊은 우정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심리현상이다. 이성친구로부터 문득 애정을 느끼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심리현상이다. 그러나 남녀관계에서 심리현상이 충돌할 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순간 관계는 쉽게 멀어지고 만다. 남성이 이성친구의 결혼 소식에 배신감을 느끼고 연락을 끊는 것도, 여성이 그냥 친구라고만 여겨왔던 남성의 고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남녀가 서로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진화심리학?

진화심리학이란 진화생물학의 성과를 심리학에 응용한 학문이다. 진화생물학은 자연환경에 더욱 잘 적응하는 형질을 가진 자손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진화가 일어난다고 본다. 진화심리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심리현상도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해왔다고 보는 학문이다.
진화심리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는 만화로 구성된 딜런 에번스(Dylan Evans)의 『하룻밤의 지식여행: 진화심리학』이 있다. 인간의 생존, 번식, 양육, 자살 등에서 나타나는 심리현상을 탐구한 데이비드 버스의 『마음의 기원』은 진화심리학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외에도 일상의 사건들에서 심리 메커니즘을 연구한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질투의 심리현상을 분석한 『위험한 열정, 질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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