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어로 쓴 칭기스 칸의 일대기

▲ © 이상윤 기자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제국으로 군림했던 몽골 제국. 이에 관해서는 그 제국의 규모만큼이나 다양한 언어로 쓰인 수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제국 건설을 주도한 몽골인 자신은 물론, 그들의 침략과 지배를 받은 중국인과 러시아인과 페르시아인 그리고 곁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았던 주변국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관점에서 칭기스 칸과 그의 후계자들의 과업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이들 수많은 사료 가운데에도 가장 상세하고 정확한 기록이 페르시아어로 쓰인 『집사(集史)』라는 책이다. 이 역사서는 14세기 초 이란 지역의 몽골 정권인 훌레구 울루스(속칭 일 칸국)의 재상 라시드 앗딘(?∼1319년경)에 의해 편찬되었다. 『집사』는 그 상세함과 정확성에서뿐 아니라 다루는 범위와 사관(史觀)의 측면에서도 단연 몽골 제국사 연구의 최고 사료로 꼽힌다. ‘연대기의 집성(J mi  at-tav r kh)’이라는 원제목이 시사하듯이 『집사』는 몽골 제국의 역사와 함께 중국, 인도, 아랍, 투르크, 심지어 유럽과 유태인 등 주변 세계 여러 민족의 역사를 집대성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집사』는 몽골의 정사(正史)임과 동시에 유라시아 종합사라 할 만하다. 많은 학자들이 『집사』를 가리켜 ‘세계 최초의 세계사’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몽골 연구의 최고 사료 『집사』, 세계에서 세 번째로 번역돼 

 

‘이슬람권 역사학 전통의 최고봉’, ‘세계 최초의 세계사’ 등 갖가지 명칭이 붙어 있는 『집사』가 얼마 전 국내 학자에 의해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작년에 『집사』의 첫 부분을 『부족지』(사계절)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김호동 교수(동양사학과)는 최근 그 후속 작업으로 『집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칭기스 칸기』(사계절)를 출간하였다. 모두 3부작으로 기획된 『집사』 시리즈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이 책은 세계 제국 창건자의 일대기라는 점에서 우리들이 특히 관심을 가질 만하다. 어려서 아버지가 독살되는 비운을 겪은 후 동족(同族)의 냉대와 살해 위협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세계 제국을 창건하고도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한 칭기스 칸. 『칭기스 칸기』는 바로 그의 드라마 같은 삶의 과정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자료이다. 

 

다양한 언어권에 대한 이해와 정밀한 고증이 돋보여 

 

흔히 고전 번역은 한 나라의 학문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김 교수의 작업은 한국 인문학 발달에 한 획을 그은 업적이다. 그의 노고 덕분으로 우리는 러시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우리말로 칭기스 칸의 일대기를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 공로는 마땅히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외형적인 것 말고도 김 교수는 꼼꼼함과 정밀함에 있어서도 고전 번역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 6개나 되는 필사본을 일일이 대조하여 이를 번역에 반영하고, 선학의 번역의 잘잘못을 하나하나 지적하여 본인 말대로 최상의 번역본을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몽골비사』, 『원사(元史)』, 『성무친정록(聖武親征錄)』 등 칭기스 칸의 생애를 적은 다른 자료의 기록을 꼼꼼히 비교ㆍ검토하여 이를 역주로 처리함으로써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자는 물론, 칭기스 칸을 알고자 하는 일반인에게도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집사』의 번역은 중앙아시아사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갖추고 다양한 언어를 습득한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고된 작업이다. 페르시아어로 된 역사서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몽골어와 투르크어로 된 수많은 용어가 나오고, 아랍어, 한어(漢語), 티베트어, 산스크리트어, 라틴어 등에서 유래한 단어와 고유명사가 수시로 등장한다. 그 동안 몽골 제국시대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집사』를 자료로서 이용할 뿐 자국어로 번역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유도 이 책이 가진 이러한 어려움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칭기스 칸기』의 국역은 『부족지』의 출간과 아울러 한국 중앙아시아학의 큰 영광이다. 속히 후속작업을 마무리하여 천학비재함을 자처한 역주자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이평래 교수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몽골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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