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식 교수(사회대ㆍ사회복지학과)

최근 ‘사회투자’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사회정책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논의는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과학계에서도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대학신문』은 사회투자정책을 비판적으로 진단하는 조흥식 교수의 글을 게재한다.


요즘 우리 정부와 사회가 솔깃해하고 있는 사회복지정책의 한 유형으로 사회투자정책을 들 수 있다. 특히 참여정부는 과거 생산적 복지나 참여복지 대신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동반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투자국가를 만들어 가는 데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투자국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기든스는 전통적 복지국가는 시장경제를 불평등을 양산하는 기제로 인식하는 반면 신자유주의 국가는 시장을 만병통치약으로 보고 있다고 하면서, ‘제3의 길’에서는 시장의 역동성이 장기적인 부의 재분배를 가능케 할 것으로 봤다. 또한 사회정책을 경제적 부담 혹은 반생산적인 요소로 보는 신자유주의와는 달리 사회투자정책은 인적자본과 사회자본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경제에 생산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처럼 사회투자정책은 평등과 시민권에 대한 인식에서 전통적인 복지국가의 담론과 구별된다. 사회투자정책은 소득의 재분배를 통한 결과의 평등보다는 인적자본 축적을 통한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고, 사회복지에 대한 시민의 권리 못지않게 노동시장 참여에 대한 시민의 의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기존 복지 패러다임과 차이가 있다.

사실 사회투자적 사회정책이 아직 한국에서는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변화하는 경제사회 구조 속에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새로운 미래 지향적 사회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한 정부는 최근 사회투자적 보건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회투자정책에 대해 적합성과 실효성 차원에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음은 당연하다.

사회투자정책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은 다음과 같은 시대적 필요성을 강조한다. 첫째,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경제와 고용구조의 양극화로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절대빈곤층 중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의 증가가 눈에 띈다. 이러한 현상은 빈곤이 발생한 이후 사후적으로 개입하는 전통적인 소득보장제도의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에 앞으로는 사전예방적이고, 취업촉진적인 사회정책의 투자적 성격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등장을 들고 있다. 급속한 저출산ㆍ고령화는 적절한 사회정책의 개입을 요구하고 있으며, 아울러 주요한 복지 역할을 담당하던 전통적인 가족기능의 약화는 아동과 노인에 대한 보호를 가족이 책임지던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문제 해결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셋째, 전 세계적으로 지식기반사회가 도래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선진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지식기반 경제의 바탕이 되는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출현한 사회투자정책은 경제성장과 사회복지를 결합시켜야 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정책 패러다임으로 추진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사회투자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투자정책이 소득보장 문제를 경시하는 반면 사회투자 효과를 과도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사회투자정책을 택한 영국의 경우 경제성장률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득분배의 추이를 보면, 그 성과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노동(실업)ㆍ소득(빈곤)ㆍ재정(사회지출)의 트라이앵글에서, 영국이 실업률은 낮지만 저임금노동이 증가함에 따라 빈곤율이 증가했고,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복지축소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투자 효과가 높지 않음을 보여 준다.

둘째, 사회투자정책의 핵심 중 하나인 인적자본 개발과 관련해 아동에 대한 지원확대는 아동빈곤문제 해결에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아동ㆍ노인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성인빈곤층의 문제를 등한시하게 된다는, 즉 인구학적 집단 중 특정집단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셋째, 영국 외 서구 어느 나라도 복지국가 대신 사회투자국가를 내세우는 나라가 없으며, 섣불리 사회투자를 내세움으로써 복지정책을 복지병으로 매도하는 신자유주의적 복지담론을 더 강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의 활성화, 근로윤리를 빈자와 복지수급자의 의무로 볼 것이 아니라, 충분한 일자리와 사회적 시민권 등을 국가의 책임과 가진 자의 책임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담론 형성에서 매우 중요하다.

넷째, 사회투자정책이 성장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사회투자정책은 우리의 경제사회 변화과정에서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첫째, 중산층에까지 보편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 등의 사회안전망이 갖춰진 서구 복지국가에서 시도하는 사회투자 프로그램들을 기본적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점, 둘째, 사회투자정책에 드는 재정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관건인 점, 셋째, 노동시장 안에서 적절한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 당장 정책적 한계를 갖게 된다는 점, 넷째, 보건복지, 교육, 고용정책, 청소년ㆍ가족ㆍ여성정책, 문화ㆍ체육정책 등 사회정책 프로그램들 간의 연계성을 높이지 못하면 정책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 등과 같은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투자국가보다는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정공법으로 나가는 게 선진통합사회를 만드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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