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인식만큼 진지한 자세 필요

94년 지방 몇몇 대학가를 지목해 동거 밀집지라고 보도한 방송사가 해당 학교 학생들의 항의가 빗발친 후 보도 내용에 대해 공개 사과한 적이 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동거에 대한 일반인들과 대학생의 인식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동거에 대한 대학생들의 인식과 동거의 사회적 의미를 살펴본다.

 

서울 A대학의 이민구씨(가명)는 2년 9개월째 여자친구와 동거 중이다. 이씨는 “사랑하는 사람과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생각에 동거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각자의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해 주게 됩니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 만날 수 있어 편하기도 하고요. 동거 전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된 점도 좋아요.” 이씨는 동거 중 성생활과 관련해 “피임은 확실히 하는 편이다”고 말한다.

 

서울 소재 B대학에 다니는 임은주씨(가명)는 결혼으로 인한 구속이 싫어 동거를 생각 중이다. 임씨는 “남자친구가 군대에서 돌아오면 바로 동거를 할 생각”이라며 “동거를 통해 친밀하고 평등한 관계를 지속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도 동거에 대한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듯하다. 임씨는 “처음부터 부모님에게 동거 사실을 얘기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

 

지방 C대학에 다니는 장철수씨(가명)는 2년 간의 동거 생활을 거쳐 동거하던 사람과 결혼했다. 장씨는 “홀로 객지 생활을 하며 느끼는 외로움을 달래고 생활비도 절약하자는 복합적인 이유로 동거를 시작하게 됐다”며 “결혼을 하기 전 동거를 통해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동거를 언론에서 집중 보도하며 현실보다 지나치게 부풀려 표현한다는 지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대학가의 원룸과 같은 독립적인 생활공간에서는 동거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림동 원룸에 거주하는 한 남자 대학생은 “공동 세탁기에서 아직 챙겨 가지 않은 다른 방의 세탁물을 꺼내다 보면 남자와 여자 속옷이 함께 나오는 경우가 있다”며 “원룸은 독립적인 생활이 보장되는 만큼 동거 하기 편해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림동 D원룸 건물에는 동거하는 커플이 여섯 쌍 정도 있다고 한다. 2002년에 「고대신문」에서 실시한 성의식 설문조사(고대 학부생 260명 대상)에서도 1백명 중 5명 꼴로 동거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은 ‘대학생 동거’에 대해 그다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지난 10일(월) 「한국대학신문」이 한․중․일 3개국 15개 대학 재학생 14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 결과, 혼전동거 및 성관계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57.1%의 한국대학생들이 ‘대체로 괜찮다’나 ‘괜찮다’라고 응답했다.(일본 72.7%, 중국 22.2%) 특히 2002년 「고대신문」의 설문조사에서는 동거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답변이 74.1%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실제 대학생들의 동거생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학생의 동거 역시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살 집 있으니 몸만 오세요”라는 식의 동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신림동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한 남자 대학생은 “원룸에 살다 보면 동거하는 학생들을 가끔 보게 되는데, 대부분 얼마 못 가 헤어진다”며 “좋아하는 사람끼리 살며 생활비도 아끼고 공부도 함께 하자는 동거의 취지는 좋지만, 단지 편리하게 성생활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주변에 동거커플이 있었다는 한 대학생도 “치약 뚜껑을 닫지 않는다는 사소한 이유로 동거 생활이 끝나는 경우를 봤다”며 “함께 사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고 동거 중 부딪히는 것들을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거를 준비중인 임은주씨(가명)는 “동거는 제도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동거 당사자들 간에 동거의 상에 대한 충분한 합의를 이룬 뒤 동거를 시작하려 한다”며 “동거도 계약관계라는 점을 인식하고 ‘함께 사는 생활방식으로서의 동거’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계속 해 나갈 때만 동거가 의미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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