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문 우수작] 봄
[시 부문 우수작] 봄
  • 대학신문
  • 승인 2007.12.0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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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일

1

우리는 본래 가을의 자식이었다. 바람이 두고 간 마른 낙엽, 혹은 미처 수확되지 못한 낙과를 집어먹으며 사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삶이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추위였으며, 배고픔이었다. 양육자 가을은 영원했고, 우리는 말라갔다. 하늘은 늘 어두웠고, 땅은 언제나 질척거렸다.

2

어느 날, 우리는 입양당했다. 낙엽은 쓸려갔으며, 낙과는 버려졌다. 풀, 꽃, 호수 따위가 주변을 채웠고, 바람은 아주 가끔 불었다. 우리의 얼굴엔 살이 오르기 시작했으며, 대기는 점점 포근해졌다. 하늘은 반드시 미소지었다. 땅은 폭신해졌다. 어디선가 가벼운 노래가 흘러나왔고, 우리는 어느새 춤을 추게 되었다. 그렇게 춤추는 낮이 지나면, 꿈꾸지 않는 평안한 밤이 어김없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양육자 가을은 우리에게서 잊혀져갔다. 그가 몇 명의 자식을 낳았는진 모르지만, 대부분 온전히 입양된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편안해졌고, 또 나른해졌다. 낮은 점차 길어졌으며, 밤은 짧아졌다. 날은 언제나 꼭 그만큼 포근했다. 우리의 춤은 네마디 노래에 맞춰 계속되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고, 모두 웃었다. 순간 바람이 그쳤다.

3

누군가 가을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낸 것도 그 때였다. 가을을 불러줘, 가을을 불러줘. 대답은 없었다. 노래는 어느새 두마디가 되었다. 가을을 불러줘. 지치지도 못하는 춤, 그칠 수 없는 웃음 사이로 새어나오는 어눌한 절규. 이미 우리는 서로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가을을 불러줘. 가을을 불러줘.

춤은 계속되었고, 노래는 한마디만 반복되었다. 모든 것이 멈춘 세계에서 웃음만은 그칠 수 없었으며, 감각은 사라졌다. 밤은 죽어버렸고, 하늘과 땅은 붙어버렸다. 그대로 굳어버린 포근한 낮. 그 때 우린 양부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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