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山寺)에 들렀을 때 이야기다. 증축보수공사가 한창인 목재구조물 사이로 본당과 별채를 둘러보고 한 숨 돌리려는 찰나였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흐느낌인지 읊조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곡조는 있는 것이 분명 노래였다. 가을비를 머금은 숲에 둘러싸인 사찰의 전경이 지는 해를 배경으로 고즈넉한 아취를 자아내는 터였는지라 뜻 모를 곡조가 신비로웠다. 노랫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허리가 굽은 노승이 다가선다. 그러고는 잔뜩 긴장해 있는 내게 말을 건넸다. “학생, 기와나 하나 올리지?”

뭔가 속은 기분에 꿈을 꾸었나 싶었다. 산 중 깊이 옹아리 튼 절간, 신비한 분위기에 젖은 때라 노승의 권고가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꿈을 깨고 나서도 그 꿈에 빠졌던 순간만은 절절히 남아있다. 절경 속 여유로움과 오묘함이 사람을 한껏 심취하게 하는 꿈 같은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노승이 “그대는 무엇을 깨닫고자 이곳을 찾으셨소?” 하고 물었다 해도 지혜로이 응대할 혜안도 없던 터였다.

꿈은 꾸는 그 자체로 값어치가 있다는 데가 또 있다. “즐거운 꿈, 즐거운 인생”,‘로또’다. 시퍼렇게 멍든 눈을 계란으로 문지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직장인, 미어터지는 지하철의 출입문 틈에 끼었지만 난데없는 미소를 선사하는 그녀의 모습, 로또 꿈에 마음 든든한 한국인이다. 한데 막상 로또 꿈을 이룬 사람들에 관해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이 꿈도 이루어진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 듯싶다. 꿈이 현실이 되어 버린 사람들이지만, 평생 몸담은 직장을 뒤로 하고 돈독했던 지인관계도 저버려야 할 뿐더러 생면부지 낯선 곳에 숨어 살아야 하니 말이다. 심지어 형제에게도 당첨사실 알리기를 꺼려하기도 한다. 세간의 관심이 너무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벼락부자가 된 묘수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도 해서겠지만 꿈이 이루어졌으니 이제 무엇을 하겠냐 추궁당하는게 힘겹다 한다. 여유롭게 살겠다 대답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언론과 사회단체에서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겠느냐 묻기 때문이다. 한 개인으로만 살기에는 너무도 많은 것을 얻었지만 공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소신있게 답할 준비가 된 경우는 드물기도 한 탓이다.

인문학 위기론, 이공대 위기론에다 이젠 고시 합격생들의 취업난, 의사공급과잉설까지 요즘 꿈 깨라는 말이 많다. 어디까지가 타당한 말이고 얼마나 부풀려진 이야기인지 가려볼 필요가 있겠으나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인들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초조함에 일찌감치 경쟁에 뛰어들 준비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일찍부터 꿈꾸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하고 내실있게 준비하는 것이니 바람직한 면도 있겠다. 하지만 꿈이 이루어졌을 때 사회적 책임에 당당히 응할 준비가 돼 있는지 자문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루는 바가 클수록 만만치 않은 세상에 대한 알음알이도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호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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