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α)걸’은 예외적인 사례일 뿐
전체 여성 노동자의 지위는 오히려 퇴보
“정책의 목표와 실질적 기능 간 간극 좁혀야”

오는 8일(토)은 ‘세계 여성의 날’로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한다. 그동안 한국 여성의 지위와 영향력은 꾸준히 상승해왔다. 여성 경제활동인구는 2006년 1천만 명을 넘어섰고 경제활동참가율은 50.2%에 이른다. 지난해 행정고시 최종합격자의 49.6%와 외무고시 합격자의 67.7%, 사법고시 합격자의 35.25%가 여성이었다. 가히 여풍(女風)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소수의 여성들 이면엔 ‘암울한’ 대다수의 여성 노동자가 존재한다. 『대학신문』은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을 맞아 한국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고, 여성단체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지난해 엘리트 여성을 지칭하는 ‘알파(α)걸’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각종 고시 합격생의 상당수가 여성이며 여성 경제활동인구가 1 천만명을 넘어서는 등 여성의 지위와 영향력이 상승했음을 시사하는 언론보도도 자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여성 노동자의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여성 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인 현실…각종  혜택은 ‘꿈’=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고용률은 59.8%였다. 이 중 남성 고용률은 71.3%인 반면 여성 고용률은 48.9%에 불과하다. 전국여성노동조합 나지선 위원장은 “정부와 언론은 여성의 지위가 향상됐으며 고용 또한 증가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비정규직이 늘어 오히려 저임금·고용불안·부당해고 등이 증가했다”며 “대다수 여성 노동자가 제도개선의 혜택을 받지 못해 전체적인 여성 노동자의 지위는 퇴보했다”고 말했다. 현재 전체 여성 노동자 가운데 67.6%는 비정규직이며 여성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3.4%에 불과하다. 또한 상당수 여성 노동자가 각종 ‘도우미’ 등 특수 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어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4대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도 67%에 이른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이헌임 활동가는 “다수의 여성노동자가 실업이나 재해를 당해도 구제를 받지 못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법으로 보장돼 있는 모성 보호 휴가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기륭전자 노조 김소연 분회장은 “출산 휴가는커녕 아이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문에 조퇴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산전·출산·육아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여성이 43%에 달했다.

◇고위 임직원 여성 비율 4%에 불과…‘알파걸’은 있지만 ‘알파우먼’은 없다=비단 비정규직이나 특수 고용된 여성노동자만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력을 갖춘 여성 노동자라 해도  ‘유리천장’이 그들의 고위직 진출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천장’이란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한다. 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여성 고위 임직원 비율은 4.4%에 불과하며, 중앙부처 4급 이상 여성 비율은 5.4%, 의회의 여성 점유율은 13.4%(OECD 평균 24.2%)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양희 선임연구위원은 “언론매체가 몇몇 사례를 대서특필해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일반화 된 것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구색 맞추기로 임명된 경우가 많고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자의 직위에 오르는 경우는 극소수일 뿐”이라고 말했다. 
 


유엔개발계획에 따르면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여성권한척도’에서 지난해 한국은 93개국 가운데 64위로 평가돼 2006년에 비해 5계단이나 떨어졌다. 이에 한국 여성노동자회 배진경 사무처장은 “한국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진출하면 그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이라며 “이는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이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 때문에 ‘한국에 알파걸은 있어도 알파우먼은 없다’는 말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유리천장’ 문제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연구위원은 “승진·승급 차별문제 해결 방법으로는 매년 기업이 여성고용 현황과 목표를 정부에 의무적으로 보고하게 하는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가 있다”며 “비록 권고조항이긴 하지만 제도를 개선하고 홍보와 교육을 늘리면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기업이 책임질 문제, 여성 개인에게 전가시켜선 안돼=한국 여성 노동자의 고용률이 낮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사회적 인식의 미비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를 여성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노총 김정아 여성부장은 “우리 사회는 결혼·출산·육아를 여성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아이를 양육하고 나서 다시 노동시장에 돌아가려 해도 이미 경력은 손실됐고 나이가 있기 때문에 저임금·비정규직 형태로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육문제에 대해 “여성 노동자를 300명 이상 고용한 기업은 의무적으로 보육시설을 설치하도록 돼 있으나 실제 시설이 구비돼 있는 곳은 전체 사업장의 1% 미만”이라며 “보육 문제는 사회와 기업이 책임져야 할 문제이지 여성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성별 임금격차 문제에 대해서는 동일가치노동에 대해 동일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배진경 사무처장은 “심지어 태안 봉사활동을 해도 성별 간 임금차이가 존재한다”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떤 것을 동일가치노동으로 봐야 하는 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우선 명확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남녀 구분없이 직무에 기초하여 임금을 주는 방향으로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여성 노동자 관련 정책 전반에 대한 일침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혜영 가족연구실장은 “외연적으로 확대되는 정책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효과적이고 실질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지가 문제”라며 “여성정책은 속성상 상징정책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정책의 목표와 실질적 기능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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