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권희철씨

1997년 가을, 영화  「접속」이 개봉했을 때, 웬일인지 나는 그 영화를, 영화관에서 두 번이나 보았습니다. 좀처럼 영화관에 가지 않는 나에게 그것은 특이한 일이었지요. 왜 그랬던 것일까요. 그때 「접속」의 인기가 대단했던 터라 영화관에 한번 들렀던 것인지, 하필 대학 신입생일 적이라 뭔가 문화생활 같은 것을 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지나쳐 그 영화의 인기를 작품성으로 착각해 관람횟수를 두 번으로 늘린 것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중에 한번은 당신과 함께였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어쩌면 거기에 정확한 이유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을 것입니다. 무차별적으로 시간을 탕진하던 시골소년에게 무슨 의미심장한 이유 같은 것이 있었을 리 없지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어떤 행동에서든 또 운명적인 의미가 없었던 적이 없지요.

영화 「접속」의 세계관이란 무엇일까요. 무의미한 세계관 혹은 세계관 없음의 사상으로도 인생은 살아지기 마련이라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해 그리워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정치적ㆍ윤리적 태도도 보여주지 않는 남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짝사랑에 목을 매는, 그와 쌍둥이인 여자가 도처에 널려있다는 것, 인터넷에 접속하면 그 쌍둥이 남매들은 언제라도 서로 만나 자폐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나는 여기서 그 어떤 사회적 관심은 물론이고 인간 내면의 깊은 고뇌라든가 소외라든가 열정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영화의 세계관은 세계관 없는 인생이라도 인생은 가(可)하다이기 때문입니다. 그 해 우리는 「초록물고기」와 「비트」와 「삼인조」도 함께 봤지만, 이런 상업영화들조차도 「접속」에 비하면 지나치게 무거운 전언(傳言)을 담고 있었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를 낯선 것으로 만들었던 것은 「접속」의 감독 장윤현이 세계노동절 101주년기념으로 '장산곶매'에서 만들었던 16mm영화 「파업전야」(1988)의 감독이기도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설적인 선배들의 시대에 비하면 지극히 가벼웠다고 할지라도,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되었고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이 만들어졌던 1997년 그해의 역사적 전망이 나에게는 너무 무겁고 어려웠습니다. 그런 나에게 영화 「접속」의 세계관 없음은 새삼 녹음해서 듣는 내 목소리마냥 낯설면서 친근하고 또 간지러웠습니다.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본 것을 보면 그런 낯설고 친근하고 가려운 느낌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닌 듯 했습니다.

우리보다 조금 선배인 한 소설가는 자신의 세대를 가리켜 ‘주윤발 세대’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는 뭐라 이름할 수 있을까요. 세계관 없이 한 생을 살아가기를 마다하지 않는 우리 세대는,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과 같은 태도로 대학을 다니며 우수한 학점으로 우수한 연봉의 직장에 다니기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이 세대는 뭐라 이름할 수 있을까요. 우리들에게는 세계관이 없으므로 이름이 없는 것인가요?

소설가 윤이형은 지난 겨울 발표한 「큰 늑대 파랑」에서 부끄럽지도 않은지 이런 문장을 써놨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거리로 나가서 싸워야 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아서 우리의 삶이 이 지경이 된 것인가?" 우리에게도, 윤이형이 던진 그 질문이 필요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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