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도 마음도 치유되지 않은 태안

“태안이 이렇게 깨끗해진 것은 자원봉사자 분들과 주민들이 함께 만든 기적입니다. 앞으로 이 기적을 바탕으로 열심히 희망을 일궈 나가겠습니다” 진태구 태안군수가 언론과의 인터뷰마다 하는 말이다. 사건 77일 만에 태안을 방문한 자원봉사자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행정안전부는 자원봉사자의 수기를 받아 ‘서해안 살리기 운동 백서’를 제작해 유엔환경회의에 제출한다. 하지만 100일 동안 3명의 태안 주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일당 6~7만원 하는 ‘방제 작업비’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언론에서 떠들고 있는 ‘기적’은 그들에게는  그저 ‘남’의 일이다.

◇기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기름유출 사건의 가장 큰 피해지인 모항리와 만리포, 천리포 등의 기름방제 활동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름유출 사건이 100일 정도 지났지만 아직도 이들 해안가의 모래를 50cm 정도 파면 검은 기름덩어리가 발견되고 있다. 방제 봉사활동에 참여한 안홍석씨(33)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해서 와봤는데 생각보다 경과가 부진하다”며 “앞으로 두세 달 정도는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원봉사자 김연미씨(29)도 ”언론에서 기적이라고 하는데 항구에 기름띠가 보일 정도로 방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천리포 봉사활동 관리팀 유영은씨(31)는 “최근 평일에는 2천명, 주말에는 4천명 가량이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온다”며 “이는 자원봉사가 가장 활발했던 1월 보다 30% 이상 줄어든 수준”이라고 밝혔다. 태안군청의 한 관계자는 “아직 방제작업이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는데, 자원봉사자의 수가 많이 줄어 방제가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는데…미미한 보상=주민들의 생활은 ‘기적’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선주책임보험의 보험처리가 늦어지면서 방제작업에 대한 주민들의 임금이 1월 이후 지급되지 않아 주민들은 당장 먹고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천리포  주민 박진우씨(37)는 “지난 1월에 지급된 생계지원금 470만원은 세금과 생활비로 다 써버렸다”며 “이제 기대할 것은 방제작업 임금밖에 없는데 정부가 1월부터 입금 하지 않아 아이들 학원비도 못 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순옥씨(73)는 “굴을 채취하지 못해 생활 자체가 어려운데 정부가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 끼니 해결도 어렵다”며 “보상할 생각을 하지 않는 정부와 삼성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언론의 보도행태에 관한 비판도 있었다. 태안 어시장 상인 이선주씨(34세)는 “어시장에 들어오는 어류들은 먼 바다에서 잡은 것이라 먹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언론들이 태안 기름피해를 너무 부풀리는 바람에 태안 어시장은 완전히 죽었다”고 말했다. 모항리 어민 정낙준씨(51세)도 “기름피해 이전에 잡은 어류와 서해 먼 바다에서 잡은 어류도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가락시장에서 거부했다”며 “태안반도 해안가 일부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서해안은 모두 정상인데 왜 언론사들은 이번 사건울 서해안 전부로 확대해 애꿎은 어민들을 죽이려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삼성과 정부, 이제 못 믿어=한편 봉사활동을 다녀온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태안 주민들은 이번 사건을 삼성이 국민들로부터 특검수사에서 관심을 없애기 위해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1000억원 지원에도 태안 주민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유민영씨(26세)는 “삼성이 보상금 명목으로 1000억원을 주는 것은 용서될지 몰라도 1000억원이라는 돈이 지원금으로 나오는 것은 몰상식적인 일“ 이라며 “돈을 주는 이유가 사건을 입막음하려는 것이라면 법정에서 중과실을 인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 역시 증폭되고 있다. 천리포 지영길 어민계장은 “정부가 삼성에 대해 ‘선보상후배상청구’를 집행할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해결을 더디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일부 주민들은 정부가 삼성에 편의를 봐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항리 주민 백영곤씨(62세)는 “지난달 처리된 태안 특별법 역시 방제비용이나 주민 배상문제 등 구체적인 해결책은 없었다”며 “특별법이 개정될 때까지 서울에서 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발생할 추가 피해도 반드시 보상해야=환경단체들은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추가 피해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환경연합 조한호 간사는 “이번 기름유출 사건의 폐기물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며 “지금 당장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이번 사건으로 건강상의 피해를 본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고 이에 대한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미 기름이 서해안 여러 곳으로 퍼졌다”며 “퍼진 기름에 의한 다른 지역의 피해도 반드시 보상돼야 한다”고 말했다. 녹색연합 윤상훈 정책팀장은 “사건은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무리하게 배를 운항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며 “이번 사건을 거울 삼아 정부는 해양사고 예방에 더 힘을 쓰고, 어선들도 기상환경이 좋지 않을 때는 운항을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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