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되기 전 꼭 해야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하지만 의사들은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는 선서는 잊고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겠노라”는 선서만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환자들의 환부에 닿는 의사의 손은 지금 기업의 검은 돈에 더럽혀졌다.

의사와 기업의 유착관계를 다룬 『더러운 손의 의사들』이 번역․출간됐다. 저자인 제롬 캐시러 교수(Jerome P. Kassirer, 미국 터프츠대․의과대학)는 「뉴 잉글랜드 의학저널」의 편집장을 역임하던 당시에도 의학계를 위한 ‘사랑의 매’를 수차례 든 바 있다. 독자들은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묻게 될 것이다. “이게 진짜야?” 정말이다.

책의 내용은 의사가 환자의 보호자와 이야기하듯 구성돼있다. 책은 먼저 현재 미국 의학계의 병을 진단하고 그 심각성을 지적한다. 의사는 제약회사와 재정적으로 이해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 자체는 부도덕하지 않다. 문제는 의사와 기업의 유착관계 때문에 우리들이 불필요한 검사를 받아야 하고 잘못된 약 처방을 받게 되며 정작 필요한 치료는 거부당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의학계’라는 환자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듣고 난후 이렇게 반박한다. “기업의 뇌물이 나를 움직인다고? 천만에!”

책은 실제 통계를 바탕으로 그 반박을 무너뜨린다. 실제 신약 추가를 요청한 의사들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의사들보다 제약회사로부터 9~21배 많은 후원을 받았다. 물론 신약이 전에 쓰던 것에 비해 나은 점은 거의 없다.

의학계와 저자의 대화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의학계가 병에 걸린 이유를 궁금해 한다. 저자는 상승한 의료비와 성과급, 특허법의 변화 등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처방도 잊지 않는다. 책은 의사가 기업으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지 않도록 법적으로 규제하고 진료와 임상연구에서 받는 모든 성과급을 철저히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10여개의 실행 항목과 7개의 논쟁거리를 내놓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의 ‘의료 전문직 의식’과 ‘자기성찰’이라고 말한다.

의(醫)는 환부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의학계의 환부를 열어젖힌다. 드러난 환부는 역시 무섭고 징그럽다. 하지만 환부를 봐야 의를 행할 수 있다. 저자는 “지금 나는 여기서 그 논쟁을 불러일으키려 한다”고 말한다. 다만 그의 일갈이 의학계만을 향하는 것이 아쉽다. 끊임없이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기업 역시 의학계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더러운 손의 의사들 제롬 캐시러지음┃최보문 옮김┃양문┃336쪽┃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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