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을 통한 동양의 정체성 다시찾기

▲이우환-점으로부터(1976,부분): 이 작품은 70년대 한국 미술계를 풍미한 미술 경향인 '모노크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단색조의 화면이 특징이다. 이우환은 70년대 '백색의 미'를 통한 '한국의 정서'를 추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

지난 달 27일(목), 28일 이틀 동안 서울대에서 ‘시각예술에서의 동양성 다시보기’라는 주제로 동서양미술문화비교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은 동서양 사이의 문화 이해를 촉진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동양성에 대한 문예적 담론’과 ‘시각예술에서의 동양성’을 주제로 발표가 이뤄졌다.

 

김정희 교수(서양화과)는 「한국 현대미술 속의 ‘한국성’ 형성 요인의 다면성」에서 60년대 이후의 한국 현대사를 개괄해 한국현대미술에서 ‘한국성’이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소의 영향 아래서 태어난 것임을 보여주었다.

 

한국미술에서의 ‘한국성’은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해 형성

 

김 교수는 화선지를 여러 겹 바르거나 화선지에 구멍을 내서 만든 작품을 예로 들면서, “60년대 관객들은 전통적인 재료인 한지를 사용한 작품을 ‘한국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는 급격한 산업화ㆍ서구화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김 교수는 “당시 초가집이 사라지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창호지문 대신 유리로 된 거주공간 속에 사는 한국인이 창호지문으로 기호화된 과거 전체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당시 관객들은 잃어버린 과거와 전통을 되찾아 주는 미술 작품이 ‘한국적’인 미술로 받아였던 것이다. 

 

또 그는 70년대에 한국적인 것으로 강조된 ‘백색의 미’가 식민사관의 잔재라며, “백색을 한국적인 정서로, 한국의 미를 자연 순응으로 보는 해석은 저항보다 순응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식민 정권에 반드시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교수는 “80년대 말 젊은 미술가들은 한국적 풍토를 강조하면서 작품의 소재와 기법을 과거에서 찾았으며, 90년대 들어서는 봉분 모양의 흙더미 속에 비디오를 설치한 것과 같이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으로 사용한 작품이 많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는 서양 미술과 ‘다름’을 표현하기 위해 채택한 하나의 전략으로, 서양미술에 대한 배타적 태도로부터 한국성이 강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과 먹’의 재발견: 현대중국미술의 물질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우훙 교수(시카고대․미술학과)는 물과 먹(수묵)을 재조명했다. 수묵화는 중국 회화의 또 다른 이름으로, 20세기 들어 서구 그림에 대응하는 장르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 중국 미술에서는 이분법적인 구분이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현대 미술가들이 물과 먹을 기발한 방식으로 사용해 기존의 관습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우훙 교수는 “수묵이 전통과 세계화를 잇기 위한 도전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수단으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전통과 세계화의 다리를 잇는 중국미술, ‘수묵’ 

 

그는 수묵 재조명의 세 가지 의미로 미술가들과 예술 매체의 능동적인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 그것이 정치적ㆍ사회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 그리고 이미 확립돼 있던 관습을 뒤엎음으로써 중국 미술가로서의 정체를 유지한다는 점을 들면서, 중국의 미술가 송동의 ‘Breathing’이라는 작품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Breathing’은 하나의 프로젝트로 송동이 천안문 시멘트 바닥 위의 물에 입김을 불어 만든 얇은 얼음판이다. 여기에서 전통적인 재료로 사용됐던 ‘물’은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훙 교수는 “이 작품에서 천안문 사태가 종결된 장소에 생명을 주입하고 실패한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려 한 미술가의 필사적인 노력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송동과 같은 중국의 실험적인 미술가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파괴와 개조를 통해 새로운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다”고 정리했다. 이밖에도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잘레 네드젯 에르젠 교수(중동산업대·건축학과)의 「재현의 (오리엔탈?) 패러다임」, 정형민 교수(동양화과)의 「한국미술에서의 동양성 개념의 출현과 변형」 등 8개 강연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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