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학생회관 식당의 임삼순씨, 관악사 관리동 문현주씨, 중앙도서관 윤병섭씨, '김밥할머니' 안병심씨, 학생회관 구두방 하용진씨.
늘 우리와 함께 해온 이들이 있다. 5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구두수선공 할아버지부터 2년차 식당 아주머니까지.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숨쉬는 또 다른 서울대 사람들을 만나 봤다.

학생회관 식당 아주머니 임삼순씨

식사시간이면 수백명이 우르르 몰려드는 학생회관 식당. 이곳 식당 아주머니들은 매일 세 번의 전쟁을 치른다. 식사시간마다 밥과 반찬을 퍼 나르느라 정신이 없고, 식사시간이 끝나도 설거지와 잔반 처리에 손 놓을 겨를이 없다. 웬만한 사람이면 힘에 겨워 얼굴을 찌푸릴 법도 한데 임삼순씨(42)의 표정에서는 그런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학생회관 식당에서 일을 한 지 2년이 됐다는 임씨는 10년 넘게 일해온 고참들에 비하면 새내기다. 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식당 일이 재밌어요. 경험이 적어 부족한 점도 많지만 열심히, 또 부지런히 배울 거에요.”

임삼순씨는 관악캠퍼스에 오기 전부터 여러 부업을 해왔다. 그러다가 문득 학생식당에서 한번 일해보고 싶은 마음에 서울대에 오게 됐고, 학생회관 식당에 배치돼 지금껏 일해 왔다.

임삼순씨는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이기도 하다. 자식 교육에 혹시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때도 많다고. 그때마다 친절하게 답해주는 학생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단다.
“하루 중 제일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일을 다 끝마치고 앞치마를 벗을 때예요. 열심히 일하고 하루를 마치는 기분은 정말 뿌듯하죠.” 임삼순씨는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다시 앞치마를 두르는 임씨의 뒷모습이 기운차 보였다.

관악사 관리동 수위 아저씨 문현주씨

늦은 밤 관악사 세탁장 입구를 엄한 눈으로 지키고 있는 직원이 있다. 바로 관악사 관리동에서만 15년째 일해온 문현주씨(62).

문현주씨는 1990년대 초부터 관악사생들과 함께 지내왔다. 문씨는 “그때 당시만 해도 벚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학부모들이 관악사에 찾아와 자식들 사는 모습을 보고 가곤 했었다”며 “요즘에는 그런 풍속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문현주씨는 매일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24시간 교대로 관악사를 지킨다. 구관과 신관을 전부  순찰하고 밤 늦게까지 세탁장을 지키다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고.

“요즘 학생들은 참 청개구리 같아. 왜들 그리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서 하는지. 세탁장에 음료수 들고 오지 말라는 말만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데도 소용이 없어.”

‘호랑이 아저씨’ 문현주씨의 꾸지람을 듣고 싶지 않은 관악사생이라면 세탁장에 갈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중앙도서관 제2열람실 환경미화원 윤병섭씨

오늘 밤만은 하얗게 태우리라 다짐하고 두 팔 가득 책을 안은 채 중도에 들어가는 학생들. 그러나 이내 쏟아지는 잠을 주체 못하고 책상 위로 뻗어 버리고 만다. 이윽고 새벽의 한기에 눈을 떠보면 이른 시간부터 나와서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있다.

새벽 다섯 시부터 중앙도서관 제2열람실을 청소하는 윤병섭씨(62). 의자만 800개가 넘는 열람실을 매일 혼자서 청소한다. 윤씨는 잠이 덜 깬 채 일하다 보니 처음 두세 시간이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자기 자리를 치우지 않은 채 떠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윤병섭씨는 마음이 안타깝다. “학생들이 커피를 먹다 남긴 채로 책상에 두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화장실도 좀 깨끗이 쓰고…. 지성인들이 모인다는 대학에서 학생들이 질서를 안 지키면 쓰나.”

윤병섭씨는 모든 학생들이 자식 같다고 말했다. “밤새 공부하는 학생을 보면 참 안쓰러워. 열심히 하는 만큼 결과가 좋아야 할텐데. 다들 잘 됐으면 좋겠어” 

인문대 해방터 김밥할머니 안병심씨

매일 어김없이 인문대 앞 해방터를 지키는 ‘김밥할머니’ 안병심씨(71). 서울대에서만 18년 동안 김밥을 팔아온 안병심 할머니를 모르는 학생이 있을까? 김밥 한 줄을 사들고 옆에 주저앉아 할머니께 말을 건넸다.
안병심 할머니는 살벌했던 5·18 광주 시가지에서도 김밥을 팔았다고 한다. 그후 시집간 딸을 따라서 서울에 올라와 대학가에서 김밥을 팔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고. 어느 대학에서는 자리 텃세에 밀려 쫓겨났으며, 서울대에서도 한때 불법 노점상이라는 이유로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래도 서울대 학생들이 정이 많제. 여름이면 덥다고 시원한 음료수 뽑아 주고, 겨울에는 따뜻한 거 뽑아서 주고…. 매일 아침거리로 내가 싸온 김밥을 사가는 학생들도 많아.”

안병심 할머니는 오전 8시면 늘 자리를 펴고 먹거리를 정돈하기 시작한다. 귀가 시간은 따로 없다. 집에서 손수 싸온 김밥과 도너츠 등이 다 떨어지는 때가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서울대까지 왔응게, 꼭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사람 돼야제” 김밥 한 줄에 한 움큼을 더 얹어주시는 할머니의 손길에서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학생회관 옆 구두수선공 할아버지 하용진씨

5분 만에 구두굽을 뚝딱 고치는 손놀림에서 녹록지 않은 연륜이 느껴진다. “내가 서울대에서 일한 지 50년이 넘었어. 서울대에서 제일 고참인 셈이지.” 학생회관 옆 구두수선집 하용진씨(76)의 목소리에서는 학교 역사와 함께 해왔다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하용진 할아버지는 20대에 6·25전쟁에 참전해 총상을 입었다. 국가유공자가 된 할아버지에게 국가에서 마련해준 일자리는 서울대 캠퍼스 구두수선집이었다. 하용진 할아버지는 동숭동캠퍼스 시절부터 구두수선 일을 하기 시작했고, 1975년 관악캠퍼스 이전 이후로는 줄곧 학생회관 옆을 지켜왔다.

“TV보면 국회의원 중에 서울대 출신들이 많잖아? 항상 ‘저 친구도 한때는 내가 고쳐준 구두를 신고 다녔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학교에 업무차 오게 되면 꼭 내게 들러서 인사하고 가는 사람도 있다니까.”

한평생 1평 남짓 되는 공간에서 일했으면 이제 답답하기도 할텐데 할아버지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 괜찮다고 한다. “이제 나이도 많이 먹어서 아무래도 일이 힘들지. 그렇지만 집안에 박혀 뒹구느니 이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어? 껄껄.”

인터뷰 내내 담담한 표정으로 구두를 수선하던 하용진 할아버지. 할아버지야말로 서울대의 살아있는 나이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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