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법,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인 구제수단 될 것”
시행 직전 일부조항 삭제…‘반쪽’자리 법으로 전락할 수도
서울대, ‘장차법’ 받아들일 준비 미흡해

지난 11일(금)부터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에관한법률(장차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장애인은 지난해 기준 전국 205만명으로 이는 전 국민의 5%에 달하는 수치다. 이처럼 장애인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소수자 집단이지만 지금까지 이들의 차별에 대한 포괄적인 법조차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의 피와 땀의 결실, 장차법=장차법에서 ‘차별’은 직접차별․간접차별․광고에 의한 차별․정당한 편의제공 거부에 의한 차별 등 네 가지로 분류돼 있다. 구체적으로 △공공기관은 사법․행정 절차 진행시 의사소통수단을 배치할 것 △300인 이상 사업장과 국․공립 및 사립 특수학교는 높낮이 조절용 책상 등의 장비를 설치할 것 △종합병원과 복지시설은 웹사이트나 문서 등에 대한 정보 접근권을 보장할 것 △국공립 문화시설과 체육시설 등에는 경사로와 탈의시설 등의 편의시설을 설치할 것 등이 주된 내용이다. 또한 차별을 당한 장애인이 진정서를 내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조사를 통해 해당 업체에 시정을 권고하고 만약 업체가 권고사항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고 3천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장차법이 시행돼 이전과는 달리 인권위의 권고가 법적 강제성을 지닌다”며 “이에 장차법은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인 구제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지난해 3월 장차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기 전까지 장애인계는 장애인차별금지실천연대(장추련)를 결성해 7년간 지속적으로 장차법 제정을 추진해왔다. 장추련 박옥순 사무총장은 “장차법은 장애인 차별에 대한 눈물겨운 투쟁의 결과”라며 “법의 제정을 위해 장애인들이 각종 토론회와 기자회견, 집회 등을 열고 점거농성을 했으며 법률 제정과정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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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법, 반쪽자리 법인가?=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제정된 장차법이 장애인들의 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지난 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법 시행령 중 ‘사법․행정절차 참여를 위한 정당한 편의제공’과 ‘장애인의 체포․신문․조사․계구사용 완화’에 관한 내용이 축소된 것이다. 이에 장추련은 7일 성명을 내고 “기존의 시행령에서 장애인들이 가장 차별받는 영역을 삭제한 것은 장차법을 반쪽자리 법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장애인들의 ‘정당한’ 편의는 기존의 ‘편의증진법’과 ‘교통약자편의증진법’하에 보호받지 못했다”며 “정부는 이를 개정해 장애인들이 ‘정당한’ 편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삭제된 시행령을 복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장차법에서는 직접차별을 제외한 교육․정보․문화․예술․체육 분야의 차별시정 유예기간이 최소 1년에서 8년으로 정해져있다. 이에 주로 간접차별, 정당한 편의 제공 거부에 의한 차별을 당하는 장애인들은 최소 수년간 ‘차별’을 받아야한다.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지난해 장차법 시행령이 공고됐지만 1년간 장차법 시행에 관한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며 “정부와 인권위는 ‘유예기간’동안 법이 사문화되지 않도록 장애인에 대한 사회인식을 바꾸기 위한 홍보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차법 시행…서울대는?=이번 장차법 시행이 서울대 장애학생들의 권리보장에 어떤 영향을 줄까. 장애학생지원센터 손지영 전문위원은 “2003년부터 마련된 지원체계를 통해 장애학생들에게 학습도우미와 이동차량 등을 제공하고 교수와 비장애학생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워크숍과 장애체험 행사를 열고 있다”며 “장차법이 시행된 만큼 장애학생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가 요구사항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대의 78개 강의동 중 64개 동에 경사로가 있고 54개 동에 승강기가 설치됐지만 계단이 많거나 경사로가 부적절하게 위치해 장애인들의 통행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장애인용 화장실 역시 46개 강의동에 있지만 대부분의 화장실이 남녀공용 또는 남성용이다. 이에 대해 시설과 배강수씨는 “정해진 예산 범위에서나마 최대한 노력해서 장애학생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라며 “장애학생들의 문제제기와 개선요청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공대의 한 장애학생은 “국가 차원의 법체계가 세워진 만큼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해 불편사항이 더 줄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구인회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정부는 일관된 복지정책을 수립해 장차법이 안정되도록 하고, 기업은 단기적인 이익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라는 장기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시민들 역시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성숙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장애우인권문제연구소 최선호 간사는 “장애인들도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차별은 감수해야한다’는 소극적 자세를 버려야 한다”며 “시민의식을 가지고 장차법을 자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조금씩이나마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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