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재즈하모니카 연주가 전제덕씨

끝없는 불황에 빠진 한국 대중음악 시장. 그 중에서도 연주음악 시장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 국내 대중음악계에 조그마한 악기 하나로 빛을 비추는 연주가가 있다. 재즈하모니카 연주가 전제덕씨(35)다.

전제덕씨는 2004년 발표한 앨범 「우리 젊은 날」로 ‘2005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를 수상하며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2006년 말에는 「What is Cool Change」라는 앨범을 발표해 한층 새롭고 다채롭게 변화한 그의 음악세계를 보여줬다. 이와 더불어 시각장애인 연주자로만 그를 주목하던 세상의 눈도 달라졌다.

시각장애인 연주자가 아닌, 국내 최고의 재즈하모니카 연주가로 거듭나고 있는 전제덕씨를 만나 그의 음악인생과 철학, 꿈에 대해 들어봤다.

하모니카를 손에 쥐기까지

전제덕씨는 어릴 적부터 음악과 함께 성장했다. 그는 음악에 무관심했던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고 말했다. “단순한 동요도 직접 연주해보니 들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1년에 100곡 정도를 각종 악기로 연습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양이었어요. 음악에 대해 선천적으로 호기심을 느꼈고, 고된 연습을 소화할 인내력과 약간의 소질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죠.”

초등학교 때 밴드부 활동을 했던 전씨는 중학교 입학 이후 사물놀이에 빠져들었다. ‘세계 사물놀이겨루기 한마당’에 출전해 대상을 수상한 뒤, 김덕수 산하 사물놀이패에서 활동할 만큼 실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전제덕씨는 사물놀이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사물놀이는 장단으로만 이뤄져 있어서 다양한 음악이 나올 수 없더군요. 반면 멜로디 음악은 수십, 수만 가지의 레퍼토리를 실험할 수 있죠. 그때부터 사물놀이에 재즈를 도입해보고, 다른 악기를 연주해보는 등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러던 차에 전씨는 우연히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을 연주를 듣는다. “10여 년 전 쯤 라디오에서 세계적인 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Toots Thielemans)의 연주를 들었어요. 순간 하모니카의 아름다운 음색에 반해버렸죠. 평소 좋아하던 재즈를 하모니카로 연주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후 전제덕씨는 본격적으로 하모니카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에는 재즈하모니카 연주자가 전무했기에 독학으로 하모니카를 깨우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없이 하모니카를 익히려니 막막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외국음반을 구해 듣고 또 들으며 연습했어요. 음반이 선생님 노릇을 한 셈이죠,”

전제덕과 하모니카, 그리고 재즈

전제덕씨는 음악 인생이 계속되는 한 하모니카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평생의 동반자로 삼은 하모니카의 매력이 궁금해졌다. “하모니카는 종류가 무척 다양해서 선택의 폭부터 넓어요. 또 넓은 음역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실용적입니다. 듣는 이가 향수에 젖어들게 하는 따뜻한 음색도 매력적이고요.”

하모니카를 통해 재즈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 전씨의 음악적 목표다. 1집 「우리 젊은 날」에서는 하모니카가 주도하는 재즈‧펑키음악을 선보였다. 2집 「What is Cool Change」에서는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하모니카의 세계를 표현했다. “재즈에서는 연주자가 매순간의 느낌을 즉흥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같은 곡이라도 누가 언제 어디서 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되죠. 포용력도 강해서 세계의 어떤 음악과도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이제는 유명 가수의 음반에서 어렵지 않게 ‘feat.(피처링) 전제덕’을 찾아볼 수 있다. 단독으로 발표한 음반도 두 장째를 채웠다. “제가 데뷔한 뒤로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과에서 하모니카 전공생을 받기 시작했대요. 요즘 클럽에서 재즈하모니카를 연주하는 후배들도 조금씩 생기고 있고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것은 정말 가슴 벅찬 일인 것 같습니다.”

전제덕이 대중음악계에 고한다

재즈하모니카로 연주가의 길을 걷고 있는 전제덕씨는 대중에게서 멀어지고 싶지 않단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원하는 매니아적 음악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대중들과 호흡하고 싶어요.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음악을 알려주고 싶거든요.”

전제덕씨의 소망에 비해 국내 대중음악계의 현실은 너무 척박하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대중음악에서 다양성이 사라졌습니다. 전 이것을 3층 건물에 비유하곤 해요. 1층에서는 소녀시대, 원더걸스가 예쁜 춤을 추며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죠. 2층에는 대중성과 음악성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전제덕 같은 사람들이 있고, 3층에는 인디밴드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 2, 3층은 폭탄을 맞은 상황입니다. 위층의 재능있는 신인들이 아래층으로 내려올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것은 기획사 음악뿐이죠. 이대로라면 1층의 음악도 금방 한계에 부딪힐 겁니다.”

외국에 비해 척박한 국내 재즈음악의 기반도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재즈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꽤 많았어요. 두 귀로 방송을 들으며 재즈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키울 수 있었죠. 인터넷 시대, 정보화 시대라고 말하지만 옛날보다 재즈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건은 오히려 열악해졌어요. 재즈연주자들이 활동할 만한 클럽 같은 무대도 많이 부족하구요.”

전제덕의 작은 꿈

지난 2월 자신과 똑 닮은 아들을 얻은 전제덕씨. 그는 요즘 아이와 노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아들에게 멋진 음악을 선물하려고요. 나중에 아들이 다 자라서 들었을 때 ‘와, 아빠 이 음악 너무 멋져요!’라고 말할 만한 음악이요.”

전씨는 연주가로서 마음속 깊이 간직한 꿈도 소개했다. “제가 꿈꾸는 음악을 하기에는 국내 무대가 조금 좁다고 느낍니다. 매번 같은 장소에서 공연하다보니 약간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미국이나 유럽의 연주가처럼 여러 대륙을 순회하며 공연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제2의 전제덕’을 꿈꾸는 연주자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연주자의 길이 굉장히 험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음악을 만들기도, 대중에 다가가기도 힘들죠. 이 모든 것을 이겨내려는 단호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물론 다른 무엇보다도 음악을 즐길 수 있어야 하고요. 저 역시 하모니카를 처음 불기 시작할 때 이 자리까지 오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자기 길을 끝까지 가겠다는 ‘고집’과 잘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신념’, 이 두 가지를 가슴에 지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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