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새정부가 두 달 만에 내놓은 여러 정책을 보며 “이거 나라 꼴이 아주 난장판이구만”이라고 한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흔히들 난장판의 어원을 조선시대 난전(亂廛)과 연관시켜 알고 있지만 사실 이 말의 어원은 과거(科擧)제도에 있다. 과거를 치르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선비들이 질서 없이 들끓고 떠들어 대던 과거 마당을 ‘난장(亂場)’이라고 했고, 뒤죽박죽 얽혀서 정신없이 된 난장의 상태를 ‘난장판’이라고 불렀다.

당시 과거가 열렸던 한양의 모습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정조 24년(1800) 정시(庭試) 초시(初試)에 응시한 사람은 11만1838명이었고, 제출된 시험지는 3만8614장에 달했다. 조선 후기 한양의 인구는 20만명 정도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500만명 정도가 서울에 고시를 보러 온 셈이다. 이렇듯 치열한 과거장에서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몸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다반사였고 부정행위가 당연시됐으며 종종 사상자도 있었다고 한다.

과거제도는 문치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의한 지위 이동을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사회적 공인 체제였다. 하지만 당시 조선 관학(官學)의 학생수용규모는 성균관 200명, 4학(四學)에서 50명씩 총 200명, 각 지방의 향교가 200~300명 정도였다. 향교가 지방마다 2개 정도 있었으니 이를 모두 합친다해도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관학에서 흡수하지 못한 인원을 사학(私學)인 서당과 서원이 맡을 수밖에 없었고 이후에 이는 붕당정치의 온상이 돼 과거제도는 자기 문하의 유생들을 고위직으로 임용해 지배구조를 고착시키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공개경쟁 시험제도라는 사회적 기제는 지금 한국사회에도 수능시험과 고시, 취업시험이라는 형태로 여전히 존재한다. 조선시대에 양민 모두에게 과거응시권한을 부여했지만 실제로는 소수 양반계층만 혜택을 누렸던, 그같은 기만적인 논리가 놀랍게도 현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누구나 능력에 의한 신분상승의 길을 열어놓고 있지만 경제적 요인에 의해 교육의 기회가 제한되고 생존경쟁을 부추겨 기존의 강자 편을 드는 살벌한 원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수능시험 난장, 고시 난장이 사교육시장을 불려왔고 기득권의 지배구조를 꾸준히 담금질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는 특목고 난장, 우열반 난장도 생겨났다. 초ㆍ중등학교 일제고사도 다시 실시됐다. 방과후에는 사설학원의 강사들이 공교육 기관에서 강의도 연다. 영어에 ‘올인’해서 수업을 하자고도 한다. 사교육시장 확대는 불 보듯 뻔하다. 온갖 난장들이 사교육시장을 키워놨고 경제력에 의한 교육 차별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이제 과거의 난장판은 매년 60만명이라는 놀라운 숫자가 응시하는 수능시험에서만 재현되는 게 아니다. 뚫어야 할 바늘구멍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바늘구멍은 점점 더 좁아진다. 수능 난장판에서는 부정행위로 20여명이 응시자격을 잃은 일도 있었고 성적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도 매년 수명씩 나온다. 또 다른 난장판에서의 사상(死傷)이다. 이제 이 난장판이 초ㆍ중ㆍ고등학교 가릴 것 없이 확대됐다. 바야흐로 전국민이 난장판으로 몸이 던져지는 시대다.


차근차근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학교가 교육적 목적보다 사회적 선발에 목적을 둔 것은 일제가 식민지배 시절에나 사용하던 방식이다. 능력주의에 의한 선발을 이유로 교육의 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말자. 아직 우리네 학교에서는 입시말고도 배울 게 많다. 배울 건 배우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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