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7대 대선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 응한 서울대생 중 보수적이라고 답한 학생이 40.5%로 진보적 성향의 학생(33.5%)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보수층의 비율(35.5%)이 진보층의 비율(40.1%)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를 17대 대선 전후에 생긴 정국의 변화 때문에 발생한 결과로 평가했다. 임혁백 교수(고려대·정치외교학과)는 대선 이후 달라진 보수·진보적 이념 성향을 “이명박정부의 실정(失政)이 반영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임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 미국 쇠고기 전면 개방 등 현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대학생들의 반감이 높아졌다”며 “이번 설문에서 높아진 진보의 비율은 이명박정부의 극단적인 실용주의 보수 정책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평가했다. 노무현정부에 실망해 보수로 전향한 사람들이 많았던 전례와 같이 이번에도 보수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반사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띠는 것일 뿐, 이를 통해 대학생 성향 자체가 ‘진보화’됐다고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윤평중 교수(한신대·철학과) 역시 “대학생들이 진보화된 것이 아니라 이명박정부에 대한 높은 실망이 보수와 진보 성향을 묻는 설문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 교수는 “진보나 보수 성향을 가진 국민 외에 중도를 표명한 40%의 향방에 따라 보수와 진보의 비율이 갈린다”며 “전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현 정부에 압도적 지지를 보낸 다수의 중도층이 비판적으로 돌아서면서 지지를 철회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 이명박정부가 내세운 ‘실용’, ‘경제’ 슬로건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현 정부가 내건 실용과 경제 살리기는 단시간 안에 국민들에게 실질적 성과를 보여주지 않으면 쉽게 실망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며 “악화된 세계 경제 상황과 맞물려 경제 성장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중도층을 돌아서게 한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설문조사에서 “현 정부(이명박정부)에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 서울대생 중 59.8%(246명)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학생 전체의 40.2%가 이명박을 대통령 후보로 지지한 것에 비해 그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이념 성향이 보수적이라고 응답한 학생 가운데 현 정부에 만족하는 비율은 겨우 22.6%(33명)로 지난 설문에서 보수적 성향의 학생 중 63.1%가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 것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수치를 보였다.

대부분의 학생들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이 보수와 진보에 대한 대학생 의식에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정우씨(영어영문학과·07)는 “보수정권으로 대표되는 이명박정부가 국민의 여론을 배제한 채 한반도 대운하, 의료민영화 등을 밀어붙이자 학생들이 보수적 성향에 회의를 느낀 것”이라고 말했다.

박효종 교수(국민윤리교육과)도 “이와 같은 학생 의식 조사 결과는 영어 몰입교육, 도덕성 논란으로 낙마자가 속출한 내각구성 등으로 대변되는 이명박정부의 정책을 반증한다”고 해석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