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시청하다 불편한 광고를 봤다. ‘빨리빨리 더 빨리’를 슬로건으로 내건 한 초고속 인터넷 회사의 광고였다.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 차를 쌩쌩 몰았고, 엘리베이터로 돌진했고, 마우스를 연타했다. 초고속 인터넷에서 속도는 단연 최고의 가치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기 위해 제시되는 우리사회의 모습까지도 긍정해야 하는 것일까. 불편하다.

현재 우리나라가 떠안고 있는 현안들을 살펴보면 ‘불편함’이 더해진다. 어디에서나 ‘빨리빨리’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는다. 가장 큰 이슈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문제 역시 ‘빨리빨리’의 졸속행정이 빚어낸 파국이다. 이 문제는 지난 노무현정부 때부터 논의돼왔다. 당시에도 각계는 광우병의 위협을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거부해왔다. 그러나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진전됐다. 대통령 취임 두 달여만에 수 년을 끌었던 협상을 종결시키고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선언한 것이다. 그야말로 일사천리. 효율성을 중시하는 CEO출신 대통령에겐 긍정적인 성과였을지 모르나 ‘빨리빨리’가 가져오는 부작용은 어김없이 발견된다. 사수해야만 했던 검역주권을 정부의 간단한 영어 문장 해석 실수 때문인지 모종의 내막이 있었는지 그대로 포기해버린 것이다.

‘빨리빨리’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사례는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AI가 발생하자 정부는 농가에 ‘조류 살처분 명령’을 내렸다. 신속한 대처였다. 그러나 살처분 명령이 내려졌던 서울 송파구에서 닭과 오리가 버젓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발견됐다. 명령은 신속하게 전달됐으나 일처리는 완벽하게 되지 못한 것이다.
두 가지 사례는 공히 우리사회에 만연한 ‘빨리빨리 증후군’을 보여준다. 이 증후군은 신속하고 빠르게 일처리를 진행했을지라도 그에 수반되는 부정확성으로 인해 문제를 야기하는 병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증후군을 ‘고쳐야 할 습관’ 정도로 본다. 그러나 광우병과 AI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나아가 목숨까지 앗아갈 정도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빨리빨리 증후군’의 살상력은 상상 이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자신하는 경제학 분야에서도 ‘빨리빨리’ 추진된 일의 허점을 지적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회계적 비용과 경제적 비용을 구분한다. 회계적 비용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명시적 비용을 말한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중요시 하는 것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한 기회비용까지도 고려하는’ 경제적 비용이다. ‘빨리빨리’를 회계적 비용의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분명 최단시간에 협상을 타결시킨 정부를 매우 효율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검역주권을 포기해 국민 건강에 위기를 가져올 것 등 포기한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경제적 비용은 분명 대폭 증가하게 된다.

지난 수십년을 되돌아볼 때 우리의 ‘빨리빨리’는 대단한 성과를 이룩했다. ‘개발연대’에 이룩한 연평균 8%성장에는 모든 것을 빨리빨리 정확하게 해내는 국민성이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삶속에는 ‘정확하게’를 배제한 채 ‘빨리빨리’만이 남아있다.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 것이 힘들 경우 먼저 확보해야 할 것은 정확성이다. 개인의 판단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적인 방향에 대한 것이나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면 특히 그렇다.

겸손해야 할 때다. 대통령은 앞으로 국정에서의 선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물론 고민이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이뤄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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