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한 정치현실과 매력적인 경제환경 사이에서

끊이지 않는 테러와 전쟁,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건,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풍부한 자금, 두바이로 대표되는 신흥투자시장. 불안한 정치현실 속에서 매력적인 경제환경을 갖춘 중동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다. 중동은 어떤 모습일까. 중동연구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동은 어떤 지역을 가리키는가?=19세기에 영국은 극동과 근동의 중간 지역을 지칭하면서 중동(中東, Middle East)이라는 지역적 개념을 만들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 이집트에 중동 사령부를 설치하면서 중동이라는 용어는 보편화됐고 현재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중동 개념이 유럽중심주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지정학적 정의라는 비판의식에서 개념을 재정의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아랍과 비아랍, 아시아와 아프리카, 이슬람과 비이슬람 등 여러 특성이 혼재한 탓에 중동은 기준에 따라 그 범위가 상이하고, 정치·경제적 편의에 따라 달리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아프가니스탄은 정치분쟁, 자원외교 등 중동문제와 관련될 경우에만 중동에 포함된다. 하병주 교수(부산외대·아랍어과)는 “중동은 지정학적, 종교적, 문화적 의미가 혼합돼 정의하기가 힘들다”며 “현재 학계에서는 중동을 아랍세계(아랍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 나라들의 집합체)와 비아랍세계인 이스라엘, 터키, 이란을 포함하는 용어로 정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중동의 지리적 영역은 동쪽으로 서아시아 대륙의 이란에서 서쪽으로 북아프리카의 모로코까지, 남쪽의 아라비아 반도에서 지중해 연안을 따라 올라간 북쪽의 터키까지 해당된다.
현재 사용되는 중동개념의 범위 자체를 좁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례로 터키는 중동에 포함되지만 일반적인 중동의 문화와 구별되는 투르크 문화적 성격이 강하다. 손영훈 교수(한국외대·중앙아시아어과)는 “중앙아시아를 이슬람 문화권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시각이 있다”며 “사막문화권인 이슬람과 초원유목문화권인 중앙아시아는 엄밀히 다른 문화권으로 각자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중동 연구 현황=1965년 한국외국어대에 아랍어과가 신설되면서 중동연구는 학문적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후 터키어과, 이란어과 등이 신설되면서 초기에는 어학 위주로 연구가 진행됐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후 한국은 대중동정책을 친아랍정책으로 전환하게 된다.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는 오일머니를 통해 재정을 확대해 이를 국내에 투자했고 이런 흐름에 맞춰 우리나라는 중동에 진출했다. 중동에 막 진출한 1970년대에는 중동을 이해하기 위한 현지조사가 중점이 됐다. 최근에는 자원외교 측면에서 특히 에너지 문제에 주목해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외교통상부, 한국무역협회, 한국중동학회 등 정·재·학계가 모여 한·중동 협력 포럼에서 한·중동 간 경제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문화연구는 노래, 소설 등의 기층문화를 통해서 중동을 이해하는 흐름 속에 있다. 지난 2007년 한국아랍어·아랍문학회는 속담, 민담텍스트, 노랫말, 영화 등을 통해 이집트인의 의식구조를 분석했다. 역사연구는 국가별로 구분해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중동학회는 지난해 ‘종교엘리트와 부족주의의 관계’를 주제로 요르단,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각 국가의 역사 속에서 관계변화양상을 살펴봤다.
한편 중동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슬람을 통해 중동을 바라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하병주 교수는 “종교는 문화의 하위영역에 속하지만 중동의 경우 이슬람이 문화를 포괄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동을 말할 때 이슬람을 떠올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됐다. 때문에 학계는 중동테러리즘을 이슬람 문화의 틀 속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이슬람세계를 건설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이슬람세계를 지키려는 지하드 이론과 같이, 이슬람권에는 외부의 위협에 맞서 싸우는 것을 무슬림의 의무로 보고 무장활동을 정당화하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시각에서 중동을 바라보는 연구는 문화를 편견없이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나 내재적 접근 대신 새로운 연구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장지향 강사(정치학과)는 “현재 연구가 내재적인 접근을 통해 이뤄져 지나친 상대주의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기 위해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이용한 객관적 연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동연구가 나아가야 할 길=오랜 역사를 가진 중동연구는 희소지역학이라 보기에는 그 논의가 활발한 편이지만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다. 지중해 지역으로 한정해 세분화된 연구를 하고 있는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연구는 중동이라는 큰 틀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유달승 교수(한국외대·이란어과)는 “아직 중동학이 발전하는 과정이라 일시적으로 거대담론이 존재한다”며 “활발한 연구를 통해 영역을 세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별 연구는 다양한 국가를 대상으로 이뤄지기보다 일부 국가에 편중되는 모습을 보인다. 황병하 교수(조선대·아랍어과)는 “현재 중동 연구는 경제적 활용도가 높은 이집트, 터키, 이란 등에 몰려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성과가 적고 연구도 힘든 시리아, 레바논 등은 소외돼 있다”며 “오지지역 연구는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황 교수는 “사람들이 여전히 중동을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로 생각한다”며 “중동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동학이 정립된 후 중동연구는 그동안 국제대학원 설립, BK21 사업 등을 통해 양적, 질적으로 성장해왔지만 수집된 중동연구자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달승 교수는 “지금의 연구자료를 종합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입장에서 연구를 새롭게 정리,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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